<999호> 재림교회와 천국
기자 : 재림신문사 날짜 : 2018-03-15 (목) 11:13

하나님 나라와 
          선교(2)

재림교회와 천국



                      - 최경천 / 삼육대학교 신학과 교수


재림교회는 예수님의 실제적인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다. 재림교회는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그 때부터 복천년이 시작될 것이라고 믿는 전천년주의에 기초한 재림신앙을 받아들이고 있다. 재림교회는 비록 초기 ‘닫힌 문’ 신학에 의해 선교적 필요성을 강조하지 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세천사의기별에 기초한 재림기별과 안식일기별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세계적인 교회로 발전했다. 하지만 전천년주의에 기초한 재림신앙 속에 이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형성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있다는 사실을 주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재림의 징조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재림교인들은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전쟁과 기근과 지진과 난리의 소문들을 때로 반기는 모습이다. 세상이 비관적이기 때문에 재림이 희망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재림의 징조를 대하는 태도가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연결될 때 일그러진 세계관이 만들어진다. 전쟁은 당사자들에게 치유할 수 없는 고통과 비극의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재림의 시간에 초점을 맞춘 신자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으로 해석하는 일종의 모순을 겪는다. 지진의 빈도수와 강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때가 됐다”라고 이야기하며 이 세상을 뜰 준비를 서두르는 것이다. 어쩌면 재림교인들에게 세상은 무서운 곳이며, 얼른 떠나야 하는 곳으로 보고 있는지 모른다. 
재림교인들이 즐겨 부르던 찬미들 역시 이 힘들고 괴로운 세상을 빨리 떠나고 싶어 하는 마음을 대변한다. “내 맘 속에 그려보는 저 하늘 에덴 낙원에”라는 찬미는 우리의 시선이 “저 하늘”에 있음을 이야기한다. “화려한 에덴의 낙원”은 꿈 속에서나 그리는 곳이며, “아름다운 본향 내가 노래하니 저 먼데 있는 집”이다. “고생과 수고가 지나간 후 광명한 천국에 편히 쉴 때”를 기다리며, “괴롬과 슬픔 많은 세상을 떠나서 그 영광 가득한 곳 내 본향 가겠네”라고 노래한다. 이 세상을 떠나야 갈 수 있는 곳이 천국인 것처럼 보인다. 재림교인들에게 이 세상의 삶은 “피곤한 순례자”의 길이며, “내 본향 몇 리 남았나”라고 노래하며, “그 날이 이르면 하늘나라 가겠네”라고 읊조리며 자조의 시간을 보내는 정거장 같은 곳이다.  

은혜의 왕국
대개 재림교인들이 기다리는 천국은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시작되는 복천년 하늘나라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영광의 나라’(마25:31 참고)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영광의 나라’만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더욱 본질적으로 인간의 마음속에서 시작되는 ‘은혜의 왕국’을 선포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영광의 왕국’에 도달하기 전에 이 땅에서 ‘은혜의 왕국’을 경험하도록 하신 것이다. ‘은혜의 왕국’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 ‘영광의 왕국’은 별나라 이야기일 뿐이고, 저 세상 이야기일 뿐이다. 동시에 이 세상에서의 삶을 가치 없는 것으로 평가절하시킨다. 

예수님과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기별의 핵심이었다. 마태복음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가 하나님의 나라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4:17)고 말씀하신 이후 예수님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해 나가신다. 팔복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5:3)라고 가르친다. 특별히 마태복음 13장에는 천국을 비유로 설명하시는데, 씨 뿌리는 비유에서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마13:31)라고 설명하신다. 이후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마13:33)고 하시고,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마13:44),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마13:45),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는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마13:52)라고 설명해 나가신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직전까지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행1:3)셨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하나님 나라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재림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복천년과 함께 시작되는 영광의 왕국에 대한 지나친 집중은 인간의 마음속에 건설되는 이 “은혜의 나라” 사상을 간과하게 만들기 쉽다. 

마음 속에 건설되는 하나님의 나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우선 인간의 마음속에 건설돼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다. 인간의 문제는 다른 것이 아닌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성경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이에서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고 기록하고 있다. 본디 인간이 타락해 죄를 지었다는 것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롬1:28)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부터 인간의 마음속에 거하셨다(창2:7; 요20:22 참고). 그러나 죄는 인간의 마음 속에 하나님이 거할 공간을 제거해 버렸다.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지 않게 된 모든 사람들을 가리켜 성경은 “육체”(창6:3; 갈5:13, 16, 17, 19, 24 참고)라고 말한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모든 삶은 “육체”며 다른 말로 “지옥”이다. 하나님 나라를 잃어버린 삶이다. 인간이 천국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이 땅에서는 완전하게 구할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며, 그것들을 사모하기 때문이다. 바로 영생, 평화, 정의, 기쁨, 사랑, 선 같은 것들이다. 이것은 천국의 특성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속성이기도 하다. 죄인이 됐다는 것은 이러한 특성들을 소유하거나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이며,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이러한 특성들을 생산해내는 생명의 근원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름 아닌 거듭남의 역사를 통해 인간의 마음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이다. 

성령으로 거듭남
결국 예수님은 인간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인간의 마음속에 성령께서 거하시는 일임을 아셨기 때문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7:37, 38)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인간의 가장 중심인 배에 계셔야 할 분은 성령이시기 때문에 그 다음 절에서 이 생수의 강이 ‘성령’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니고데모에게 하셨던 말씀도 동일한 배경에서 이해된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거듭남을 위한 말씀인가? 아니면 하나님 나라인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며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는 말씀은 거듭나야 하나님나라를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그 주제가 하나님 나 라이다. 그런데 이 나라는 “물”로만 아니라 “물과 성령”(요3:5)으로 거듭나야만 들어갈 수 있는 나라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요한이 물로 침례를 베풀던 “회개의 침례”(행13:24; 19:4 참고)만이 아니라 “성령으로 침례”(마3:11; 행1:5; 행11:16; 고전 12:13 참고)를 받아야 하나님 나라를 들어간다는 것을 설명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하나님나라는 인간이 죽어서 가든지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난 다음에나 들어가는 나라가 아니다. 재림교인들이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주제를 발견하지 못하는 이유는 개인적인 회심과 구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살핀 것처럼 예수님의 기별은 하나님의 나라였으며, 그의 사역은 인간의 마음 속에 천국을 시작하시기 위함이었다.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은 이런 것이었다. 
“너는 지금 유대나라를 회복되는 것을 기다리고 있지만, 내가 이 땅에 온 것은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기 위해 온 것이다. 성령께서 거주하는 사람이 천국이다.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는 사람이 천국이다. 천국은 눈에 보이게 건설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하나님 모신 바로 네 마음이 천국이다. 그러므로, 마음에 성령을 모시라.”

내가 하나님의 나라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거하시는 날부터 우리의 마음은 천국의 열매 곧 성령의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고 외쳤던 것이다. 바울은 어떤 장소나 환경이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마음에 성령께서 거하시는 사람이 곧 하나님의 나라임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며 그의 일생을 하나님의 나라로 살았다. 옥중에서도 기뻐했고, 난관앞에서 기도로 길을 보고, 고통 중에서 만족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영혼이 천국이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을 요한도 알았다. 그래서 요한은 계시록에서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계1:6)셨다고 고백했다.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씩이나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 하리로다”(계5:10)고 선포한다. 그렇다. 우리가 성령께서 거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백성 앞에서 봉사의 삶을 살아가는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오늘 시작되는 하나님의 나라
화잇 여사는 이 같은 사실을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예수를 힘입어 우리가 안식을 얻는 때에 하늘나라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와서 나를 배우라’는 주님의 초청에 응답하여 나옴으로 우리는 영생을 시작하는 것이다”(소망, 331). 계속해서 “그리스도를 그 진정한 품성 그대로 보고 그를 마음에 받아들이는 자들은 영생을 얻는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는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는 것이며, 믿음으로 마음에 성령을 받아들일 때에 곧 영생은 시작된다.” 화잇 여사는 분명하게 “하나님의 나라는 마음에서 시작된다”(소망, 506)라고 고백한다. 
 예수님 십자가 오른편에 있었던 강도가 “예수여 당신의 나라가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눅23:42)라고 목마르게 요청할 때,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응답하셨다. 강도가 언제 천국에 들어갔는가? 강도가 죽어서 그 영혼이 천국에 가지 않은 것도 확실하지만, 강도가 그 날 천국에 들어간 것도 확실하다. 그 짧은 시간 강도는 하늘을 평화와 용서와 기쁨을 누렸다. 강도는 마음 속에 건설된 천국을 맛봤다. 그러니, 굳이 영혼불멸설을 염두에 두고 “오늘”이라는 단어를 “오늘 네게 이르노니”라고 할 필요도 없다. 오늘이라는 단어 앞에 ‘콤마’가 붙든, 전에 붙든 분명한 것은 강도가 그 날 은혜의 왕국에 들어갔다.

하나님 나라와 선교
그렇다면, 이와 같은 은혜의 왕국에 대한 경험이 선교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선교는 마음에 천국이 세워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선교는 선교전략적인 방법으로 열매를 맺게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마음이 천국인 사람이 행하는 모든 삶이 선교다. 마음에 천국인 사람은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자신의 모든 삶을 천국이 되게 만든다. 자신의 가정을 천국으로 만든다. 더 친절한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녀가 된다. 자신의 직장을 천국으로 만든다. 불화와 경쟁 대신 화목과 사랑이 이끌어가는 곳으로 만든다. 자신의 교회를 천국으로 만든다. 감출 수 없는 기쁨으로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미한다. 자신의 지역사회를 천국으로 만든다. 비록 영광의 왕국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내가 사는 지역사회를 더 살기 좋은 곳, 더 행복한 곳으로 만든다. 그래서 이 땅에 살아 있는 동안 우리의 “착한 행실”(마5:16)로 하늘에 계신 하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며 산다. 한 마디로 걸어다니는 천국인 셈이다.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진 사람들이 서 있는 곳이 천국이 된다. 공평과 정의가 세워지고, 병든 자와 가난한 자가 희망을 갖는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이사야서의 희년의 기별을 선포하신 이후에 외치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귀에 응하게 된다(눅4:21). 그리고 마침내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25:23)라는 칭찬의 주인공이 된다. 실제적이고 역사적인 재림은 마음속에 주님이 거하시는 경험적이고 현재적인 재림을 경험한 사람들에 기쁜 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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