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8호> 이백쉰세번째 이야기
기자 : 재림신문사 날짜 : 2015-04-30 (목) 11:32




Q.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거할 때 안식일에 나무한 사람을 하나님 명령대로 온 회중이 진 밖에서 돌로 그를 쳐 죽였습니다(민 15장).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직접 벌하지 않으시고 사람의 손으로 돌을 던지게 하셨나요?


A.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분노하심을 열방이 능히 당치 못하느니라”(렘 10:10).
우리가 우리의 하나님을 생각할 때 아버지로서의 하나님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분은 또한 우주를 통치하는 통치자로서 왕이십니다. 통치자는 국법을 잘 수행하는 것이 나라와 국민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진멸하라는 말씀을 많이 하시는가”라고 묻습니다. 왕은 공의를 이행하는 것이 그의 왕국에 사랑을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왕으로서 공의를 이행하실 때에는 국법을 엄격히 집행해야 합니다. 국법을 공정하게 집행하는 것이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지요. 사람들을 시켜서 법을 집행하게 한 것은 집행하는 사람들이 법을 잘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배우는 시간이 됩니다. 우리 입장에서 생각하면 끔찍하다는 말이 맞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고의적으로 범하는 것은 통치자를 경멸하는 것이며, 국기(國紀), 나라의 기강을 문란하게 하는 것입니다. 국기를 잘 지켜야 할 국민들에게 국기를 문란하게 한 죄를 다스리게 한 것은 국민들이 나라의 기강을 올바로 세우는 일을 해야 함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공정하게 법으로 다스리는 일은 온 국민을 사랑하는 것이고 온 국민으로 하여금 국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마음에 깊이 새기게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 인간 부모가 자식들을 사랑하는 것에 비교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보다 훨씬 더 깊고 짙은 사랑이지요.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기까지 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이 사랑은 죄로 죽은 사람을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사랑의 가장 기본이 살려주려는 정신과 행동입니다. 그 살려주는 것은 세상에서 좀 더 오래 살게 하는 그런 것이 아니고 영원한 생명으로 살도록 살려주는 것입니다. 이 일을 방해하는 것을 하나님의 사랑이 용납하지 못합니다. 이것을 공의라고 하지요. 공의를 집행하는 기초가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공의를 집행할 때는 아버지로서 하는 것이 아니고 통치자로서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형벌 같아 보이는 것들은 다 통치자로서 공의를 집행하는 것이며, 그 목적은 모든 사람을 올바르게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그 기회가 지나가버린 상태에 있을 때에는 그에게 공의를 집행함으로 모든 사람이 참 생명에 참여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들으면 구약성경을 읽을 때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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