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3호> 이백마흔아홉번째 이야기
기자 : 재림신문사 날짜 : 2015-03-26 (목) 14:05




Q. 사복음서에 같은 사건에 관한 기록이 약간씩 다른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요? 같은 성령에 의해 기록되었는데 다른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분들이 계십니다.

A. 사도행전에는 바울이 다메색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건이 세 번 기록되어 있는데 모두 조금씩 다르게 기록되어 있습니다(행9:1~7, 22:6~11, 26:12~18). 22장과 26장은 바울이 직접 말하는데도 약간씩 다릅니다. 이것은 분위기를 따라서 자기가 경험한 사실을 더 자세히 말하고 또 전체적인 윤곽만 말하는 것의 차이로 보입니다.
사복음서도 같은 설명을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서 말한 것입니다(벧후1:20, 21).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고 말합니다(딤후 3:16). 그러므로 성경의 어떤 것이든지 다 하나님의 감동, 곧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데 감동을 받은 사람들에게 성령께서 각각 다른 면을 기록하게 하실 때에는 다르게 기록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기록자가 특히 감명을 받은 장면이나, 또 자기가 집중적으로 기록하기를 원하는 사실들을 기록할 수 있습니다. 어떤 기자는 자세히 기록하고 어떤 기자는 윤곽만 기록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복음서를 받는 대상이 누구인가 하는 것과, 또 복음서를 기록하는 목적과 관계가 있습니다.
마태는 유대인에게 예수님이 구주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유대인의 왕이신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합니다. 그래서 성령이 감동하시고 보여주신 것들을 그 목적에 합당하다고 생각되는 방식으로 선별해서 기록하는 것입니다.
복음서 기자들이 기록할 당시는 지금처럼 기록문화가 발달한 때가 아니었지요. 지금 같은 종이도 없었고 필기도구도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경의 기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구주시라는 사실을 명백히 깨닫도록 최대한 간단하고 명료하게 기록해야 했지요. 그리고 그 복음을 누가 받아 읽을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요한은 예수께서 행하신 것을 다 기록하면 이 세상이라도 그것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안다고 했습니다(요 21:25). 그렇기 때문에 영감과 계시로 주신 것들 중에 기록 목적에 맞게 기록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기록하도록 성령께서 또 인도하셨다고 믿습니다.
마가는 로마인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고 믿도록 하려는 것이 목적이었고 누가는 이방인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요한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기자들은 이런 목적과 일치하게 사건과 말씀들을 선별해서 기록했습니다. 거기에는 또 기자의 신앙 고백적 요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보고 듣고 겪은 사건, 성령께서 기록하라고 하신 내용들 중에 이 목적에 합당하게 선별하여 기록한 것이지요.
또 한 면을 생각하면, 예를 들어 네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한 산을 묘사하라고 하시면서 산을 계시로 보여주신다고 생각해봅시다. 1번 사람에게는 산의 앞면을 보여주고 2번에게는 뒷면을 보여주고 3번에게는 산의 꼭대기를 보여주고 4번에게는 산의 양 측면을 보여주고 기록하라고 하면 그 내용이 모두 다를 것입니다. 이것들을 다 종합하면 온전한 산을 알 수 있겠지요.
사복음서도 이런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사건도 기자가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달리 표현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들을 다 종합해서 우리는 사건의 완전한 모습을 알 수 있게 되지요. 이렇게 서로 약간씩 다르게 기록하게 하심으로 우리는 복음 사건을 더 풍성하고 완전하게 알 수 있게 하셨으니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코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주소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망우로 21길 18, 302호 / 전화: 02)960-0690 / 팩스:02)968-2293 / 이메일: 3004news@hanmail.net /등록번호: 204-29-34632 Copyright ⓒ 재림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