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2호> 좀비 영화에 나타나는 불사의 소망(하)
기자 : 재림신문사 날짜 : 2020-09-03 (목) 14:04




좀비 영화에 나타나는 불사의 소망(하)

좀비 콘텐츠 속 뒤틀린 기독교 내세관


낭만주의 문학에서 최초로 불사의 존재를 다룬 작품 ‘프랑켄슈타인’의 서사를 살펴보면 현대 좀비 콘텐츠와 유사한 요소를 여럿 발견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과학기술의 힘으로 몸의 죽음을 극복하더라도 그 결과는 참혹하고 비참한 괴물의 탄생이라는 것, 이것이 ‘프랑켄슈타인’과 오늘날 좀비 콘텐츠들 사이의 대표적인 공통점이다.
이러한 사고는 ‘단 한 번 사는 삶’의 소중함을 강변하는 실존철학의 사상과 맥이 같다. 인간의 삶은 ‘완전한’ 죽음을 통해 완성되고 본래적인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는 마르틴 하이데거의 인간 이해와도 동일하다.
인격의 존속, 영혼의 불사에 관한 기독교 신앙은 비현실적인 종교적 욕망의 일환이라는 것, 좀비 콘텐츠는 이러한 믿음을 반영한다. 인간은 인간으로서 죽어야 하며, 인간이 죽지 않고 불사하게 된다면 그 끝은 오직 인간성의 상실과 기괴한 욕망의 극대화일 뿐이다. 이처럼 오늘날 좀비를 비롯한 불사의 존재에 대한 서사를 다루는 문화 콘텐츠는 정통 기독교에서 말하는 불사의 이미지를 비틀어 놓고 있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좀비 신드롬이라는 문화현상 이면에는 오컬티즘, 과학주의에 대한 양면적 태도(수용과 회의) 그리고 실존철학적 인간이해가 자리 잡고 있으며, 기독교의 내세 신앙과 척을 지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겉으로 보면 단지 미술사지만 그 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술뿐만 아니라, 예술이라는 것이 인간의 삶 속에서 어떻게 발전해왔고, 인간은 왜 예술을 욕망해왔고, 어떤 영감을 줬는지를 기록한 전방위적인 역사서다. 곰브리치는 이 책을 통해 왜 예술가가 답답해서 (기존 사조를) 깨고 나가면 그다음에 이 사회에 변화가 뒤늦게 따라오는가 이야기하려 한다.
마찬가지로 최근 좀비 콘텐츠가 대세를 이루는 것은 교회가 성경적 세계관을 피력하는데 한계에 부딪혔고 오늘날 콘텐츠 제작자들은 답답함을 느껴 성경적 세계관의 반대편으로 튕겨져 나아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밀란 쿤데라는 인간이란 필연적으로 진자운동을 하는 존재라고 봤다. 양극단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존재란 의미다. 그렇다면 결국 선교란 이 진자 운동을 성경적 세계관 안에 머무르게 잡아두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권태건 aux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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