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8호> 순망치한(脣亡齒寒)
기자 : 재림신문사 날짜 : 2018-10-26 (금) 09:29


     
                   제 10과  순망치한(脣亡齒寒)

                       세리와 바리새인의 기도





춘추시대, 제후들이 서로의 땅을 넘보던 시절 이야기이다. 진나라 헌공은 괵나라 땅을 갖고 싶었다. 그런데 진나라와 괵나라 사이에 우나라가 있었다. 헌공은 우나라 왕에게 보물을 잔뜩 실어 보냈다. 괵나라를 치러갈 테니 길을 좀 비켜 달라는 뜻이었다.
“진나라와 우나라는 형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왕께서 우의를 다지자는 뜻으로 보물을 보내셨습니다. 괵나라만 치고 우나라에는 조금도 해를 끼치지 않을 테니 길을 좀 열어 주십시오.”
진나라 사신 말에 우나라 왕은 귀가 솔깃했다. 더구나 진귀한 보물까지 눈앞에 내놓자 거기에 정신이 빠져 청을 받아들이려고 했다. 이때, 현명한 신하 궁지기가 소식을 듣고 펄쩍 뛰었다. 그는 당장 왕을 찾아가 말했다.
“괵나라는 우나라의 보호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괵나라가 망하면 우나라도 망합니다. 옛말에 광대뼈와 잇몸은 서로 의지하고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고 했습니다. 괵나라와 우나라가 바로 그런 관계입니다. 절대 길을 열어 주셔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왕은 보물에 눈이 멀어 끝내 길을 내주었다. 궁지기는 찾아올 화를 헤아리고 가족과 함께 우나라를 떠났다. 결과는 뻔했다. 궁지기의 예상대로 진나라는 괵을 친 뒤, 돌아오는 길에 우나라를 기습 공격해 멸망시키고 말았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은 여기에서 비롯한 말로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라는 뜻이다. 서로 가까운 관계에 있는 한쪽이 망하면 다른 한쪽도 영향을 받아 온전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림1에서 왼쪽 원이 오른쪽 원보다 커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림2에서 A가 B보다 더 어두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두 상대적인 비교 때문이다. 그림1에서 왼쪽에 있는 가운데 회색 동그라미가 오른쪽 가운데 동그라미보다 더 커보인다. 그림2에선 A가 상대적으로 더 밝은 곳에 있기 때문에 B보다 더 어두워 보인다. 그림1에서 가운데 동그라미의 크기나 그림2에서 A, B의 색이 다르지 않고 똑같음에도 불구하고 주변 환경으로 인해 달리보이는 착시현상이 생기게 된다. 
함께 살다보면 인생에서도 이런 일을 겪게 된다. 남이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더 좋은 집이나 더 좋은 차, 더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면 내 삶이 참 초라해 보인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이다. 반대로 내가 누군가보다 더 좋고 나은 환경에 처해있다면 다른 누군가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겠지만 나는 반대로 상대적 우월감을 느낄 수 있다. 이렇듯 우리는 단독으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이다. 남에게 영향을 받고 영향을 주는 존재가 바로 우리, 사람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우리의 감사도 상대적인 비교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바리새인의 기도를 살펴보자.
바리새인의 기도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눅18:11,12).
바리새인은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러나 바리새인의 감사는 지극히 상대적이었다. 바리새인은 자신의 상황과 다른 사람, 세리의 상황을 비교하며 상대적 우월감을 감사로 표한다. 그의 감사는 이런저런 지인과 같지 않음을 감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도 종종 이런 실수를 한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누군가의 불행이 상대적으로 나에게 감사의 조건이 되는 경우가 많다. 결론적으로 참된 감사는 누군가와의 상대적 비교에서 오는 우월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다른 사람들은 사랑받지 못한 버림받고 저주받은 존재고 없어져야할 존재인가?
아니다. 예수님은 완벽한(?) 바리새인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위해 오셨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과 하나님께 감사한 사람은 그 감사를 다른 누군가와 나누는 사람이다. 그리고 감사의 조건도 인간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찾는 사람이다. 자신이 깨달은 하나님의 사랑을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에게도 나누어주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의 모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의 기도는 매우 잘못된 기도이다.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무엇이 근본이 되어야 할까?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해 기뻐하리로다”(하3;17,18).
그리스도인은 구원의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며 즐거워해야 한다. 어떤 사람과의 비교에서 오는 상대적 우월감과 감사를 착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럴 때에 바리새인의 기도는 이렇게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기도가 되길 소망해본다. 
잊지 말자! 그리스도인은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고 격려가 되는 존재이지 뽑아버려야 할 대상이 아님을.
새로 쓰는 바리새인의 기도
바리새인이 기도하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별 다를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또한 저기 있는 저 세리와도 다를 것이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욕먹고 손가락질 당하며 살고 저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삽니다.
부끄럽습니다.
제가 무엇이라고… 
주님!
제가 어떻게 저들을 도울 수 있겠습니까? 저 세리에게 어떻게 주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을까요? 제가 어떻게 하면 저들에게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릴 수 있을지 알려주십시오! 그리고 이제 내가 저들의 손을 잡고 함께 갈 수 있는 바리새인이 되게 해주소서!
사랑을 받은 자답게 사랑하는 사람이 제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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