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7호> 사필귀정(事必歸正)
기자 : 재림신문사 날짜 : 2018-10-19 (금) 11:33


     
                   제 9과 사필귀정(事必歸正)

                       침례 요한




‘사필귀정’이란 처음엔 옳고 그름을 가리지 못해 올바르지 못한 일이 일시적으로 통용되거나 득세할 수는 있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모든 일은 결국에는 반드시 바른 길로 돌아가게 돼 있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충남 당진군 환영철강에서 근무하던 청년 김모 씨는 2010년 9월 7일 새벽 2시께 5m 높이의 용광로 위에서 용광로에 철을 넣어 쇳물에 녹이는 작업을 하던 중 발을 헛디뎌 추락했다. 김 씨는 사고 당시 지름 6m의 전기 용광로턱이 걸쳐 있는 고정 철판에 올라가 고철을 끄집어 내리려다 중심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용광로엔 1600℃가 넘는 쇳물이 담겨있어 김 씨의 시신조차 찾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한 네티즌은 그를 추모하는 시를 적어 인터넷에 올렸다. 제목은 ‘그 쇳물 쓰지 마라’다.

광염(狂焰)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 말 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 적 얼굴 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주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보자, 하게. 

이 기사와 시를 읽으면 누구나 가슴이 먹먹해진다.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젊은 청년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유가족들과 청년을 개인적으로 아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견디기 힘든 일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오늘의 주인공 침례 요한도 비슷한 상황이 처하게 된다. 받아들이기 어렵고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 처한 침례 요한을 살펴보며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았으면 한다. 침례 요한의 등장은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 매우 충격적이고 신선한 사건이었다. 
“요한의 이상한 외양은 청중들의 마음에 옛날의 선지자들을 연상시켰다. 그의 태도와 의복은 엘리야 선지자와 비슷했다. 그는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국가적인 부패를 비난하고 널리 퍼진 죄들을 견책했다. 그의 말은 직설적이고 날카로우며 또한 확신시키는 힘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죽은 사람 가운데서 일어난 선지자 중 한 사람일 것이라고 믿었다. 나라 전체가 들끓었고 많은 무리가 광야로 모여들었다. 
요한은 메시아의 강림을 전파하며 백성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쳤다. 죄에서 정결함을 받는 상징으로서 그는 요단강 물에서 그들에게 침례를 베풀었다. 이와 같이 그는 뜻깊은 실물 교훈을 통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죄로 말미암아 더러워졌다는 것과 또한 마음과 생애의 정결함이 없이는 메시아의 왕국에 참여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소망,102,105).            
그런 침례 요한이 헤롯왕의 죄를 지적해 옥에 갇히게 된다.
“또 그 밖에 여러 가지로 권해 백성에게 좋은 소식을 전했으나 분봉 왕 헤롯은 그의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과 또 자기가 행한 모든 악한 일로 말미암아 요한에게 책망을 받고 그 위에 한 가지 악을 더해 요한을 옥에 가두니라”(눅3:18~20).
옥에 갇힌 침례 요한의 심정을 이렇게 묘사한다. 
“요한의 생애는 적극적인 활동의 생활이었으므로 그의 옥중 생활의 음침함과 무위(無爲)함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변함없이 여러 주일이 지나자 낙담과 의심의 그림자가 그를 덮었다. 요한의 제자들은 그를 버리지 않았다. 그들은 감옥에 접근하도록 허용됐으므로 예수님의 사업에 대한 소식을 그에게 전하고 백성들이 어떻게 그분의 주위에 모여들고 있는지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만일 이 새로운 교사가 메시야라면 그분은 왜 요한을 석방시키기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지 의심했다”(소망,214). 
침례 요한도 사람인지라 자신의 앞날이 염려되고 걱정됐다. 그리고 더불어 예수님께서 자신을 구해주리라는 기대도 가지고 있었다. ‘예수님의 앞길을 예비하고 준비하고 증거했던 나에게 분명 예수님께서 내가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도와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며 버텼다. 그러나 시간은 점점 흐르고 침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왜 아직 활동하시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결국 침례 요한의 기대는 애석하게도 산산이 부서진다. 예수님을 위한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 최선을 다해 자신의 역할을 해낸 침례 요한에게 어떤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는 허망하게 옥에서 목숨을 잃었다.
“침례 요한의 운명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깊은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왜 요한이 감옥에서 신음하다가 죽도록 버림을 받아야 했던가 하고 그들은 묻는다”(소망,223).  
그렇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이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요한에게 기적적인 구출은 허락되지 않았을지라도 그는 버림을 당하지 않았다. 하늘로 옮겨간 에녹이나 불병거를 타고 승천한 엘리야일지라도 결코 옥중에서 외롭게 죽은 침례 요한보다 더 위대하거나 영예를 더 많이 받지는 않았다. ‘그리스도를 위해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해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빌1:29). 그리고 하늘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모든 선물 중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신임이요 가장 높은 영예인 것이다”(소망,224).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침례 요한의 죽음은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것이다. 왜냐면 선하고 바르게 살았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업을 했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기대했던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침례 요한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분명하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어둡고 암울하고 그 결과가 비록 좋지 않을지라도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모든 신앙인들은 엘리야처럼, 에녹처럼 위대한 신앙인이란 것이다. 어떤 위대한 결과를 가져와야만, 우리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어떤 좋은 결과를 가져와야만 위대한 신앙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다 다르고 믿음과 신앙의 길이 다 다를지라도 결국 그 모든 신앙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 하늘이란 ‘사필귀정’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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