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호> 우문현답(愚問賢答)
기자 : 재림신문사 날짜 : 2018-10-11 (목) 15:32


     
                   우문현답(愚問賢答)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요8:6~8)
‘어리석은 질문에 현명한 대답’이라고 해 우문현답이라고 한다.
어느 마을에 고약한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빌린 가난한 유대인이 돈을 갚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고리대금업자는 당장 돈을 갚지 못하면 감옥에 보내겠다고 협박했다. 돈을 빌린 유대인은 매일 고심하며 전전긍긍했다.
그 가난한 유대인에게 총명하고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 아버지의 상황을 알게 된 딸은 아버지가 감옥에 갈 처지가 되자 대신 고리대금업자를 찾아가 사정해보기로 했다. 그러나 아무 소용없었다. 단호하게 돈을 갚지 않으면 아버지를 감옥에 보낼 것이라는 대답만 들었을 뿐이다. 
한편, 딸이 돌아간 후에 고리대금업자는 아름다운 딸의 모습에 흑심이 생겼다. 그는 딸에게 아버지의 빚을 탕감해 줄 테니 내기를 하자고 제안했다.
“여기에 검은 돌과 흰 돌이 하나씩 들어 있다. 흰 돌을 꺼내면 아무런 조건 없이 채무를 면제해주겠다. 그러나 검은 돌을 꺼내면 채무는 면제해 주겠지만, 너는 나에게 시집을 와야 한다.”
그러나 고리대금업자는 주머니 속에 검은 돌 두 개를 넣어뒀다. 그 사실을 눈치 챈 딸이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마을 사람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내기가 시작됐다.
딸이 드디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모두 숨죽여 그 장면을 지켜봤다. 그런데 딸은 돌 하나를 꺼내자마자 돌을 멀리 던져버린 것이 아닌가! 그리고 딸이 큰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제가 던진 돌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주머니에 남아있는 돌을 보면 제가 집어던진 돌이 무슨 색인지 알겠지요. 여기 검은 돌이 남아 있는 것을 보니 앞서 제가 꺼내 던진 돌은 흰 돌이 분명하군요. 그렇지요?”
가슴 졸이며 그 장면을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고 고리대금업자는 씁쓸한 표정으로 물러갔다. 
우리 주변엔 끊임없이 사건과 사고가 일어난다. 일어나는 일들이 언제나 좋은 사건이고 좋은 일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살다보면 위에서 언급한 이야기처럼 위기의 순간, 절체절명의 순간도 찾아온다.
오늘의 주인공인 예수님과 간음한 여인이 바로 그러했다. 의도적으로 예수님을 시험하고 함정에 빠뜨리려고 잘 짜놓은 덫에 한 여인이 걸려들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했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요8:3~5).
“남자가 이웃 사람의 아내와 함께 잠을 자서 간음죄를 지으면 그 두 사람을 다 죽여라”(레20:10,쉬운성경).
이 상황은 여자를 벌하기 위한 자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만약 간음이라는 죄 자체를 벌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당연히 상대방 남자도 함께 끌려와야 했다.
그러나 이 상황은 예수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이 여인은 그저 그 일을 위한 도구로 취급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들의 꾸며낸 존경에는 그분을 해하기 위해 교묘하게 짜놓은 음모가 가려져 있었다. 그들은 그분께서 어떠한 결정을 내리실지라도 고소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면서 그분을 정죄할 구실을 확보하기 위해 이 기회를 이용했다. 그분께서 이 여인을 정죄하시지 않는다면 모세의 율법을 멸시한다는 비난을 받을 것이며, 마땅히 죽어야 된다고 선언하신다면 로마인들만이 가진 권리를 횡령하는 자로 로마인에게 고소당할 것이었다”(소망,460).
예수님께서 어떤 쪽을 선택하더라도 문제가 되도록 매우 치밀하게 설계한 덫이었다. 만약 우리라면 어떻게 했을까? 예수님의 반응은 아래와 같다.
“소위 정의의 수호자들이라는 이들이 예수님을 해할 함정을 만들기 위해 이 여인을 죄 짓게 했던 것이다. 그분께서는 그들의 질문은 들은 척도 안 하시고 몸을 굽혀 시선을 땅에 고정시킨 채 흙에다 글씨를 쓰기 시작하셨다”(소망,461).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모인 군중들은 예수님의 반응에 답답했다. 어서 답을 해야 자신들이 준비해온 함정으로 예수님을 잡을 텐데 그렇지 못하니 참을 수가 없었다. 예수님께서 침착하게 손가락으로 땅에 글을 쓴다. 그들은 그가 무엇을 쓰는지 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온다.
“그러나 그들의 시선이 예수님의 시선을 따라 땅바닥으로 쏠렸을 때 그들의 안색은 변했다. 그들 앞에 그려져 있는 것은 그들 자신들의 생애의 죄의 비밀들이었다. 바라보고 있던 백성들은 그들의 표정이 갑자기 변하는 것을 보자 무엇 때문에 그처럼 놀라고 부끄럽게 생각하는지 알기 위해 밀며 앞으로 나왔다”(소망,461).
그들이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갈 때 그들은 자신의 죄를 깨닫는다. 자신의 실체를 깨닫는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는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그 글을 보고 입을 열 수 없었다. 하나 둘 자리를 떠난다. 
“그분께서는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도 제거하지 않았으며 또한 로마의 권위도 침해하지 않으셨다. 고발자들의 계획은 좌절됐다. 이제 거룩함을 가장하던 그들의 의복은 찢겨진 채 그들은 무한히 순결하신 분 앞에서 정죄를 받고 서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애의 숨은 죄악이 무리들 앞에 공개될까봐 두려워 떨면서 머리를 숙이고 눈을 땅에 떨어뜨린 채 그들의 희생자와 동정하시는 구주를 남겨두고 한 사람씩 슬금슬금 도망쳐버렸다”(소망,461).
만약 우리가 예수님처럼 모든 것을 다 아는 존재였다면, 우리는 그 사람들의 죄를 개인적으로 다 공개해버렸을지도 모른다. “야! 네가 이런이런 죄를 지어놓고 누굴 죽여! 너부터 죽자.” 이렇게 반응했을지도 모른다. 위선과 가식의 탈을 쓴 사람들을 혼쭐내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끌려온 여인도, 그리고 비난하는 자들도 모두 그분의 자녀였다. 어느 누구도 상처받길 원하시지 않으셨기에 인간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방법과 대답을 선택하셨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우문현답!
그리스도인이 위기의 순간을 대했을 때 아마도 가장 현명한 대답은 사람을 살리는 대답이 아닐까? 공격하고 비난하고 물어뜯는 대답이 아니라 살리는 대답! 어느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사랑의 대답! 이것이 우리의 대답이 되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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