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5호> 괄목상대(刮目相對)
기자 : 재림신문사 날짜 : 2018-10-05 (금) 13:07


     
                   괄목상대(刮目相對)





오나라 손권에게 여몽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여몽은 집이 가난해 제대로 글을 배우지 못했다. 그는 무식했지만 용맹이 뛰어나 수많은 전공을 세워 장군이 됐다. 어느 날, 손권이 그를 불러 말했다.
“그대는 앞으로 이 나라에 큰일을 할 사람이오. 그러니 글을 읽어 학문을 쌓으면 좋겠소.”
“군사 일로 쉴 새 없이 바쁘니 글 읽을 시간이 없습니다.” 
“장군, 그대에게 뛰어난 대학자가 되라는 말이 아니오. 그저 옛날 사람들이 남긴 좋은 책들을 많이 읽어 두라는 말이오. 공자께서도 책 읽기가 가장 유익하다 했고 역적 조조도 책 읽기를 좋아한다고 자랑 삼아 떠드는데 어찌 스스로 힘쓰지 않는단 말이오?”
그날 이후, 여몽은 깨우친 바가 있어 열심히 독서에 전념했다. 책에서 많은 지식을 얻었고 그 이치를 깨달았다. 그 뒤, 노숙이 주유의 뒤를 이어 대도독이 됐다. 여몽과 오랜 친구 사이인 노숙은 손권의 신하 가운데 학식이 가장 뛰어났다. 하루는 노숙이 나랏일을 의논하고자 여몽을 찾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지식이 넓어 모르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네, 언제 그렇게 공부했는가? 오직 무예만 뛰어난 줄 알았는데, 오늘 보니 학식이 넓고 깊어서 그 옛날 여몽이 아닐세그려.”
노숙이 크게 칭찬하자 여몽이 미소 지으며 대꾸했다.
“사람은 헤어진 지 사흘이 지나면 눈을 비비고 상대를 쳐다볼 정도로 달라져야 하는 법이라네, 허허허!”
‘괄목상대(刮目相對)’는 눈을 비비고 상대를 대한다는 의미로 여몽에게서 비롯한 말이다. 예전엔 보잘 것 없었으나 학식이나 재주가 갑자기 훌륭해지는 것을 뜻한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을 제자들에게 알리시고 모든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흩어질 것을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베드로가 대답해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마26:33).
베드로가 옥이나 죽는 데까지도 주를 따르겠다고 말했을 때 그 모든 말을 진심으로 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는 자기 자신을 알지 못했다. 그의 마음속에는 상황의 부추김으로 생애 속에 나타난 악의 요소들이 감추어져 있었다. 그가 자신의 위험을 느끼지 못한다면 이것은 그의 영원한 파멸을 입증할 것이다. 구주께서는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사랑까지라도 억눌러 버릴 이기주의와 철면피함이 베드로에게 있는 것을 보셨다. 많은 결점, 억제하지 못하는 죄, 주의성 없는 정신, 성화되지 못한 성질, 시험에 뛰어드는 부주의성 등이 그의 생애 가운데 나타났다. 그리스도의 엄숙한 경고는 마음을 살피라는 일종의 요구였다. 베드로는 자신을 불신임하고 그리스도께 대한 더욱 깊은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소망,673).
베드로는 진심으로 예수님을 따라죽기로 마음먹고 자신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큰 착각이었다. 베드로는 자기 자신을 알지 못했다. 결국 베드로는 어떠한 태도를 보이는가? 우리가 너무나 잘 알 듯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다. 
주변의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예수와 함께 있던 자가 아니냐고 물어봤을 때 ‘맞소! 내가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이요! 나도 함께 잡아가시오’라고 말하지 못했다. 
베드로의 말대로라면 그렇게 나와야 마땅한데, 베드로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대답했다. 심지어 저주하고 맹세하며 예수님을 모른다고 주장한다. 베드로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스스로 얼마나 민망하고 미안하고 죄스럽고 마음이 괴로웠을까? ‘내가 그렇게 호언장담했는데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자신에 대해 크게 실망하고 낙심해 괴로움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그런데 그 때 베드로의 눈이 예수님의 눈과 마주친다. 
그리고 베드로는 뛰쳐나와 예수님에 대한 미안하고 죄스런 마음과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감으로 땅을 치며 통곡한다. 만약 예수님의 눈빛이 증오와 분노가 가득한 눈빛, 배신당한 사람의 독기 가득한 눈빛이었다면 어땠을까? 베드로는 죄책감을 덜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저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그치고 그저 본인의 일로 돌아가 어부로 한평생을 마쳤을지도 모른다. 베드로를 변화시킨 것은 예수님의 사랑의 눈빛이었다. 베드로는 깊은 동정어린 예수님의 눈빛을 통해 예수님의 마음을 읽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자신을 신뢰했던 자신의 모습을 후회하고 반성하며 이제 하나님을 의지하는 길 말고 안전한 길이 없음을 깊이 깨닫게 됐다.
훗날 사도행전의 훌륭한 베드로의 모습은 이 경험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배신한 죄인을, 자신의 호언장담을 단숨에 뒤엎어버린 배은망덕한 제자를 분노와 실망, 복수의 눈빛으로 바라보신 것이 아니라 사랑과 동정의 눈빛으로 바라본 예수님. 그 사랑의 눈빛이 베드로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놓았다. 사4장에서 협박을 받는 베드로의 모습이다.
“바로 같은 방에서, 그리고 바로 그 몇몇 같은 사람 앞에서 베드로는 치욕스럽게 그의 주님을 부인했었다. 그가 심문을 받기 위해 나왔을 때 이 일이 분명하게 그의 마음에 떠올랐다. 이제 그는 자신의 비겁함을 속죄할 기회를 얻었다. 
베드로가 주님이 심문받으실 때 취했던 행동을 기억하는 참석자들은 이제 그를 투옥과 사형의 위협으로 겁나게 할 수 있으리라고 우쭐해 있었다. 그러나 그분이 가장 필요로 하는 시간에 그리스도를 부인했던 충동적이고 자신 만만하던 베드로는 심문받기 위해 산헤드린 앞에 선 베드로와는 크게 달랐다. 범죄 이후 그는 개심했다. 그는 더 이상 교만하거나 뽐내지 않았고, 그 대신 겸손했다. 자신을 신뢰하지 않았으며 베드로는 성령으로 충만했으며, 이 능력을 의지해 한때 그가 부인했던 그 이름을 영화롭게 함으로 그의 반역의 흔적을 제거하려고 결심했다”(행적,62,63). 
베드로는 오늘의 제목 그대로 괄목상대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가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밑거름은 바로 예수님의 사랑이었다. 그 사랑을 깨달은 베드로는 더 이상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변화됐다. 그리고 전혀 다른 사람이 돼 하나님의 사도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괄목상대의 경험이 우리에게도 필요하지 않은가? 괄목상대의 경험이 필요하다면 먼저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깨닫자! 또한 누군가를 변화시키고 싶은가? 변화와 성장의 시작은 사랑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므로, 비판하거나 지적하지 말고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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