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4호> 동상이몽(同床異夢)
기자 : 재림신문사 날짜 : 2018-09-20 (목) 13:37


     
                   동상이몽(同床異夢)




같은 자리에서 다른 꿈을 꾸는 것을 ‘동상이몽’이라고 한다. 같은 상황에 처했을지라도 전혀 다른 목적을 갖고 해석하고 대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유대의 종교지도자들과 예수님이 그러했다. 그들은 같은 성경과 예언을 연구하면서도 전혀 다른 입장을 나타냈다. 
같은 성경을 연구하고 같은 하나님을 믿는 전혀 다른 두 존재가 바로 그 당시 유대종교지도자들과 예수님이었다.
그렇다면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은 무엇을 가르쳤고, 예수님은 무엇을 가르치셨나?
지난회에 살펴 본 바와 같이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은 신앙의 본질에서 벗어나 부수적인 것으로 백성들의 눈과 마음을 고정시키려고 노력했다.
로마인들에 대한 증오심, 그들의 국가적, 종교적 자존심은 유대인에게 그들의 예배 형식에 더욱 엄격히 집착하게 하였다. 제사장들은 종교 의식에 철저한 관심을 나타냄으로써 거룩하다는 평판을 유지하고자 힘썼다.
“흑암과 압박 속에 있는 백성들과 권세를 잡으려고 갈급하는 관원들은 그들의 원수를 정복하고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시킬 자가 오시기를 갈망했다. 그들은 예언들을 연구했으나 영적 통찰력이 없었다. 이리하여 그들은 그리스도의 초림의 굴욕을 가리키는 성경 구절들을 간과했으며, 그분의 재림의 영광을 언급하는 성경 구절을 잘못 적용했다. 교만이 그들의 통찰력을 흐리게 했다. 그들은 예언을 그들의 이기적 욕망에 일치되게 해석했다”(소망,30).
그들의 국가적, 종교적 자존심, 즉 선택받은 민족으로서의 자존심이 신앙을 본질에서 벗어나 형식과 틀에 집착하게 만드는 원인이 됐다. 그 결과 종교지도자들은 성경을 연구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정치적, 군사적 독립을 갈망하며 그것을 성취시킬 메시아를 기다렸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자존심, 이기적 욕망에 맞게 예언과 성경을 해석하고 그렇게 가르쳤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분리되고 그들의 유일한 방패이신 성령을 거역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성경을 연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높이고, 하나님께서 모든 다른 민족들은 다 멸시하는 것으로 해석될 만한 예언을 찾았다. 그의 원수들을 정복하고 진노로 이방인을 발로 밟으시는 왕으로서 메시야가 강림하신다는 것이 바로 그들의 거만스런 자랑이었다”(소망,65).
그런 마음으로 성경을 해석하던 종교지도자들에게 예수님이란 존재는 눈엣가시일수 밖에 없었다. 메시아라고 등장한 존재가 자신들의 주장과 전혀 다른 말을 하는 것이다. 
경제적, 군사적, 정치적 독립을 가져올 강하고 힘 있는 메시아를 기다렸는데, 예수의 모습은 그들이 기대한 바와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4:16~19).
예수님은 이 땅에 회복을 위해 오셨다. 망가지고 무너진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오셨고,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잃어버린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오셨으며, 인간이 인간 스스로 잃어버린 생명을 회복시켜주기 위해 오셨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종교지도자들이 기대하는 바와는 전혀 다른 사역으로 백성들을 만나신 것이다.
그것을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사건이 바로 성전정결 사건이다(마21:12~14 참조).
같은 장소에서 전혀 다른 꿈을 꾸는 종교지도자들과 예수님의 입장을 가장 잘 나타내는 사건이 바로 성전정결 사건이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다. 
성전에서 이익과 욕심을 위해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일에 대해 종교지도자들은 입을 다물고 눈을 감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자신의 주머니와 이익을 위해 이 정도는 괜찮다고 자위하던 종교지도자들에게 매우 강하게 경고하신다. 
정신없이 내몰려 나간 종교지도자들이 정신을 차리고 돌아왔을 때 성전에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천천히 생각에 잠겨 마음에 증오심을 품고 성전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들이 그 곳을 떠난 사이에 얼마나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던가! 그들이 도망갔을 때에 가난한 자들은 뒤에 남아 있었다. 이제 그들은 사랑과 긍휼을 띤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눈물어린 눈으로, 당신의 주위에서 떨고 있는 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희를 건지리니 너희는 나에게 영광을 돌리라. 내가 이 일을 위해 세상에 왔노라’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선생님이여, 나를 축복하소서’라는 간절하고도 가련한 호소를 하면서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 몰려들었다. 그분의 귀는 모든 외치는 소리를 들으셨다. 그분은 온유한 어머니의 긍휼보다 더 큰 긍휼을 가지고 고통당하는 어린것들을 굽어 보셨다. 모든 사람들이 돌보심을 받았다. 각색 병을 가진 사람들이 치유를 받았다. 벙어리가 입을 벌려 찬송하고, 눈먼 자들이 그들의 시력을 회복시켜 주신 분의 얼굴을 바라봤다. 고통당하는 자들의 마음은 즐겁게 됐다”(소망,162,163).                                    
우리는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결케 하신 사건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성전을 정결케 하신 후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다. 정신을 차리고 종교지도자들이 돌아 왔을 때 성전에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병으로 힘들어 하던 사람들이 치유되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건강을 회복하고, 고통당했던 사람들의 마음이 즐겁게 되는 일!
이것이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결케 하신 후 그분께서 하신 일이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위해 오셨다. 그리고 그분은 심지어 성전의 존재이유조차도 인간을 위함임을 몸소 보여주셨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가? 우리는 어떤 목적으로 하나님을 믿는가?
감히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 되길 기대해 본다.
사람을 위해 오신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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