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3호> 지록위마(指鹿爲馬)
기자 : 재림신문사 날짜 : 2018-09-14 (금) 09:45


     
         제 5과   지록위마(指鹿爲馬)


                          
                         유대 종교지도자와 예수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한 사람은 진나라 시황제다. 그는 자기 권세를 오래 누리고 싶어 불사약을 찾으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50세에 죽었다. 진시황이 죽었을 때 태자 부소는 북쪽 흉노족을 막으려고 변방에 가 있었다. 진시황의 곁에는 어린 호해 왕자만이 있었다. 환관 조고는 승상 이사를 꼬드겨 진시황이 죽으면서 남긴 조서를 가짜로 꾸몄는데 그 내용은 이러했다. 
‘황제 자리는 호해가 이어받고 부소에게 사약을 내려 자결케 하라!’
효심이 강했던 부소는 이 가짜 조서를 그대로 믿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호해가 황제 자리를 이어받자 환관 조고는 권력을 잡았다. 어리석은 호해를 마음대로 주무르던 조고는 권력을 독차지하려고 승상 이사를 모함하기까지 했다. 
“폐하, 이사가 반역을 꾀하고 있사옵니다.”
결국 이사는 조고가 꾸민 음모로 목숨을 잃었다. 정치적 맞수였던 이사가 죽자 진나라는 완전히 조고의 세상이었다. 조고는 승상 자리를 꿰차고 나라를 마음대로 뒤흔들었지만 그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호해 황제의 자리까지 넘보던 조고는 하찮은 출신 때문에 신하들이 자신을 따르지 않으면 일을 그르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기편이 몇 명일지 신하들을 떠보기로 했다. 하루는 그가 사슴 한 마리를 호해 황제에게 바치며 말했다. 
“제가 귀한 말을 한 필 얻어 폐하께 바치옵니다.”
그러자 호해는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허허, 승상은 농담도 잘하시오. 아무려면 내가 말과 사슴도 구별하지 못하겠소? 이건 사슴이 아니오?”
그러나 조고는 말이라고 하면서 신하들에게 물었다.
“그대들은 똑똑히 보시오. 이게 사슴이오? 말이오?”
조고가 눈을 부리며 신하들을 둘러봤다. 그들은 조고의 위세에 눌려 잠자코 있거나 말이라고 대답했다. 또 말이 아니라고 한 사람은 기억했다가 죄를 뒤집어씌워 죽였다. 그 뒤, 조고에게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뒷날, 조고는 끝내 호해를 없애 버리고 부소의 아들 자영을 허수아비 황제로 삼는 악행을 저질렀다. 
‘지록위마(指鹿爲馬)’는 여기에서 나온 말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슴을 말이라고 하는 행태를 말한다.
예수님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모습과 참 흡사하다. 그들은 바벨론에서 돌아온 후 종교적인 교훈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국내 각처에 회당을 세우고 거기서 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율법을 해석했다. 그리고 학교와 교육기관을 세우고 예술과 과학과 아울러 의의 원칙을 가르치노라고 했다. 그러나 이런 기관들은 부패하게 됐다.
포로생활 중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이교(異敎)의 사상과 풍습을 받아들였는데 이것들이 그들의 종교 예식에 도입됐다. 그들은 많은 점에서 우상 숭배자들의 풍습을 따랐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에게서 떠나자 제사제도에 대한 참된 교훈을 잊어버리게 됐다.
하나님이 주신 제사제도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이 제도의 각 부분에 그분을 가리키는 표상이 있었다. 하나님이 주신 이 제도에는 생명력과 영적 미(美)가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들의 의식에서 영적 생명을 상실했으며 죽은 형식에 집착했다. 그들은 제물이 가리키는 그분을 의지하는 대신에 희생 제물과 의문(儀文) 그 자체를 신뢰했다. 제사장과 랍비들은 그들이 잃어버린 것을 보충하기 위해 그들 자신이 여러 규정들을 많이 만들어 냈다. 이 규정들이 엄격해질수록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더욱 적게 나타났다. 그들은 자신들의 성결함을 의식의 많고 적음으로 측정했고 마음은 자만과 위선으로 가득 차 있었다(소망,29).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신앙의 본질에서 벗어나 비본질적인 것에 집착했다. 하나님 자체에 관심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최대 관심인 사람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예배형식, 유전, 규정, 제도 등 비본질적인 것에 관심을 두고 집착해 영적인 빈곤을 채우려 했다. 보이지 않는 영성에 자신들의 노력을 기울이는 대신 보이는 외관에 노력을 쏟고, 겉모습과 형식, 제도에 힘을 기울였다. 성경을 가르치지만 예수가 없는 가르침, 율법을 외우지만 예수가 없는 지식, 성전봉사를 하지만 예수가 없는 봉사, 예수의 일을 하지만 예수가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종교지도자로서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성품을 제대로 반사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비본질적인 것이 마치 신앙의 전부인 마냥 백성들을 속이고 기만했다.
그리고 지도자의 잘못된 선택은 마침내 백성들의 고통으로 이어진다. 종교지도자들은 사랑의 하나님을 매우 불편하고 어렵고 무서운 분으로 제시했다. 결국 백성들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제사를 드리지만 하나님을 모르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성경을 읽고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마음에 기쁨은커녕 신앙이 점점 부담스럽고 삶의 무거운 짐을 안고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성경을 연구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제사를 드리지만 용서와 구원의 기쁨이 없는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이 그대로 백성에게 전해진다. 지도자들의 이기적 욕심으로 인한 잘못된 가르침이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을 모르는 백성으로 만들고 만다. 
예수님은 이런 기만당하는 백성들을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사슴을 말’이라고 가르치는 지도자에게 그들의 잘못과 위선을 일깨워주고 백성들에게는 참된 하나님을 알려주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다음 회에 구체적으로 다루겠다.
나는 어떠한가? 나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참 모습이 드러나고 있는지 생각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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