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0호> 1·4후퇴로 꽃피운 부산 재림신앙(하)
기자 : 재림신문사 날짜 : 2021-06-10 (목) 15:12
1·4후퇴로 꽃피운 부산 재림신앙(하) 

70년 역사 매실보육원…한 여 성도의 신앙 결정체 




120년이 넘는 한국 재림신앙 역사에서 서울 회기동 일대는 꾸준히 중심지 역할을 맡아왔다. 하지만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며 공산군이 서울까지 밀고 들어오자 서울에도 대피령이 내려지면서 성도들은 피난길을 떠나야 했다. 이로 인해 제주와 부산 등지에도 회기동과 같이 병원, 학교 등이 차려지게 됐다. 성도들의 신앙은 전쟁 중에도, 피난 도중에도 사그라들 줄 모르고 새로운 지역에서 또다시 활활 타올랐다. 코로나19로 많은 것이 흔들리는 시기지만, 이보다 더 험했던 시기에도 신앙에 의지했던 선조들을 본받고자 부산을 방문해 과거의 흔적들을 쫓았다. 



매실보육원의 시작 
6·25전쟁 속 부산에 터를 잡은 재림성도 중 이곳 부산에 자신의 유산을 남겨둔 이가 있다. 바로 매실보육원의 설립자인 최매실 여사다. 최 여사는 본래 평양 출신으로 해방 이후 서울에 내려왔다가 1·4 후퇴 때 부산으로 내려오면서 부산과 연을 맺게 됐다. 
최 여사는 부유한 형편 덕분에 독립운동에도 자금을 보탠 바 있으며, 평양의 여러 교회 설립에도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주변에 신앙하는 모든 이들을 살뜰하게 아낀 것으로도 유명했다. 또한 강한 평양 말씨에 우레와 같은 목소리, 당당한 태도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최 여사의 셋째 딸인 박진숙 원장은 이때 아버지 몰래 목회자들에게 여비를 챙겨주던 어머니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앙심도 깊어 부산 온천장으로 피난을 와서도 서둘러 예배드릴 장소부터 구했다. 그리고 그때 얻은 집의 2층 공간이 동래교회의 모체가 됐다. 
매실보육원은 1952년 초량동 거리에 모여있던 고아들을 본 최 여사가 수정동 산꼭대기에 천막을 지으면서 시작됐다. 부모가 공산군에 의해 살해당하던 와중에 작은 몸뚱이로 부산까지 피난 온 경우가 대부분이라 길바닥에서 구걸하며 생활하는 것이 전부인 아이들이었다. 그녀는 이 아이들을 보고 “돈 벌어서 뭐하나 이런 데 써야지”라며 갖고 있던 돈으로 천막 2동을 짓고 솥을 사다 걸어 아이들에게 밥과 국을 먹였다. 공짜로 밥을 먹이고 돌봐준다는 소식에 순식간에 수가 불었다. 그러다 보니 천막은 공간이 좁아져 눕지도 못하고 앉아서 서로 기대 자야 하는 수준이 됐다. 그래서 최 여사는 당감동 일대의 토지를 구매해 보육원을 세웠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같은 자리에서 70여 년간 매실보육원 뜰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20명 남짓의 아이들이 있는 지금의 매실보육원은 박진숙 원장이 운영하고 있다. 최 여사가 1999년 101세의 나이로 작고하면서도 박 원장에게 부탁한 것이 이곳이다. 박 원장은 처음 보육원이 세워지던 때부터 최 여사와 함께 아이들을 돌봤다. 당시로는 드물게 이화여대 아동교육학과를 전공한 ‘인텔리’였다. 그리고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 후에는 이곳과 멀어지나 했지만 보육원에 반드시 아동보육 전공자를 두라는 정부의 지침에 출산 한지 한 달이 갓 지났던 그때 시댁에는 한 달만 다녀오겠다고 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이제 박 원장도 적지 않은 나이지만 아이들과 꾸준히 교감하며, 신앙으로 돌보고자 애쓰고 있다.
 
신앙으로 키운다
최 여사는 자신의 일곱 자녀도 모두 대학에 보낸 만큼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 때문에 매실보육원에서 신앙을 하며 신학과에 진학해 목사가 된 이들도 10여 명에 달한다. 지금은 대부분 은퇴했지만, 정OO, 추OO, 서정준 목사 등이 매실보육원에 머물며 신학과에 진학해 목회자가 됐다. 삼육대 이외에 부산 인근 대학에 진학하는 원생도 많았다. 
이들에게 최 여사는 아직도 큰어머니 같은 존재로 남아있다. 서정준 은퇴목사는 16세에 신앙을 받아들였다가 가족과 절연하고 반내현 목사의 소개로 매실보육원을 찾았다고 한다. 그의 막막한 소식을 듣고 흔쾌히 받아들인 최 여사 덕분에 서 목사도 이곳에서 마음껏 신앙하며, 이곳 원생들의 신앙생활도 도울 수 있었다. 그는 최 여사에 대해 “신앙심이 대단하신 분이다”며 “아이들을 항상  신앙으로 이끄시려고 했다”고 회상하며 “또 이곳 출신의 원생들을 무척 아끼셔서 나중에 찾아뵈면 항상 용돈을 주시려고 한 게 기억난다”고 덧붙였다. 
당감동교회도 매실보육원 덕분에 생겨난 교회다. 부산중앙교회를 다니다가 먼 거리 탓에 보육원 안에 교회를 만들게 됐다. 그리고 서정준 목사가 당감동교회에 부임하면서 지금의 교회 건물도 건축할 수 있었다. 지금도 보육원 아이들은 안식일마다 이곳에 모여 예배를 드린다. 
최 여사는 여성임에도 개의치 않고 자신의 방식으로 신앙을 실천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온 삶의 발자취는 그리스도인의 표본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박 원장 역시 그런 어머니의 신앙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었다. 이런 곳이야 말로 살아있는 영적 유산이라고 부를만 하지 않을까. 

신시내 real0avery@gmail.com

   

 
주소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망우로 21길 18, 302호 / 전화: 02)960-0690 / 팩스:02)968-2293 / 이메일: 3004news@hanmail.net /등록번호: 204-29-34632 Copyright ⓒ 재림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