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3호> 주재의 하나님
기자 : 재림신문사 날짜 : 2018-11-22 (목) 13:35
<하나님이 하나님 되게 하라>

주재의 하나님


                     - 차영석 / 부산서부교회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했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했사오니 주는 높으시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29:11~12).
그린란드의 차가운 바닷물 속에는 무수한 빙하들이 있다. 빙하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작은 빙하 조각들은 한 쪽 방향으로 움직이는데 큰 방하는 다른 쪽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작은 얼음 조각들은 수면의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움직이지만, 거대한 빙하는 깊은 조류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의 국가 형태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나라는 어떤 형태일까? 일반적으로 국가의 형태나 체제를 나누는 기준이 되는 것이 주권이다. 주권의 사전적 의미는 “국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력, 대내적으로는 최고의 절대적 힘을 가지고 대외적으로는 자주적 독립성을 가진다”고 돼있다. 그리고 그 주권을 누가 가졌는지에 따라 국체(國體)가 결정되고 그 주권이 행사되는 방식에 의해 정체(政體)를 구분한다. 전자엔 한 사람 왕이 주권을 독점한 군주국과 여러 사람이 주권을 나눠 가지는 형태인 공화국이 있고, 후자에는 주권자의 기분에 따라 주권이 행사되는 전제 정체와 성문화된 법에 근거해서 주권이 행사되는 입헌제가 있다. 이러한 기준에 따른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 홀로 주권을 독점한 전제 군주제에 가까울 것이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
성경은 하나님을 절대 주권(sovereignty)을 가지고 만유를 통치하시는 우주의 왕으로 묘사한다(시103:19; 95:3,6). 모든 것은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제 아래에 있으며, 하나님의 계획이나 허락이 없이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심지어 사소해 보이는 참새 한 마리의 생사여탈권 같은 문제조차도 하나님의 재가가 필요하다(마10:29).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시든지 누구와 의논하시지도 않고(사45:24) 누군가의 영향도 받지 않고(롬9:14~16) 오직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하신다(시115:3;엡1:11). 수많은 변수가 있어 보일지라도 역사의 큰 물줄기는 결국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을 성취하는 방향으로 흐른다(사46:9~11). 그러기에 하나님의 주권은 절대적이고 오직 하나님 한 분에게만 속해 있다(대상 9:11~12).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는 영역
주권은 그것이 행사되고 미칠 수 있는 영역이 제한된다. 우리나라 국민의 주권이 미국에서는 행사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나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은 그 미치는 영역 또한 무한대이다. 하나님의 주권은 첫째로 모든 천사들에게 미친다. 시편 기자는 천사를 가리켜 “그에게 수종 들며 그의 뜻을 행하는 모든 천군”(시103:19~22)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주권의 실행자이다. 하나님의 뜻은 천사들을 통해 예외 없이 성취된다. 하나님 정부에서 반역을 일으켜 추방된 사탄도 하나님의 주권의 영향 아래에 있다. 욥기는 사탄이 그의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하나님의 허락을 구하는 장면이 나온다(욥1:12). 사탄의 악한 계획조차도 절대 주권자인 하나님의 승인이 없이는 실현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집트의 바로가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대적한 것조차도 그분 자신이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 것이라고 주장하신다(출11:10). 여러 나라의 흥망성쇠의 예언을 담은 다니엘서는 인류의 역사의 흐름 또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문제라고 말한다.

개인의 인생에 미치는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주권은 각 개인의 인생사에도 행사된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도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따라 예정됐다고 말한다(엡1:5). 물론 이것은 각 사람의 운명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운명론적으로 결정됐다는 것을 의미하기보다, 모든 일에 주도권을 쥐신 하나님의 주권과 선택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특히 각 개인이 이 땅에서 행할 역할과 사명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주권은 뚜렷이 드러난다(롬9:13~23;신7:7,8). 예레미야는 이미 태어나기 전에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선택이 됐다 (렘1:5).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는 그의 출생 200여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그가 이미 어떤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날지 예언돼 있다. 누가는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행13:22). 이 말은 다윗을 이 땅에 나게 하실 때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 이룰 사명도 함께 설계 해 놓으셨음을 암시한다. 같은 표현이 이방인의 사도로 선택된 바울에게도 적용된다(행9:15;갈2:8,9). 하나님의 주권은 우리 삶의 외적인 환경을 주관할 뿐 아니라 내 인생 설계에도 관여돼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계획된 의미와 목적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에 대해 화잇은 “각 사람은 하늘의 영원한 경륜 속에서 각자가 차지할 자리를 갖고 있다. 각 사람은 영혼 구원 사업을 위해 그리스도와 협력해서 일해야 한다. 하늘 집이 우리를 위해 준비돼 있음이 확실한 것처럼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일할 특별한 자리가 정해져 있다는 사실도 확실하다”(COL.326,327)고 했다. 

하나님 절대주권의 정당성
그러나 혹자는 개인의 인생설계까지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모든 것을 하나님 뜻대로 다 정해 놓았다면 이 세상에서 개인의 선택과 의지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바울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의 정당성을 다음과 같이 옹호한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롬9:14~18) 
다시 말해 하나님이 누군가를 긍휼히 여길 때 그 대상자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가치나 필요가 있거나 혹은 그 대상자나 제 삼자가 긍휼히 여겨 달라고 간구했기 때문에 긍휼히 여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고 싶기 때문에 긍휼히 여긴다는 것이다. 이것은 환경이나 사람은 하나님의 계획이나 행위에 변수가 될 수 없음을 단언하는 것이다. 이어서 바울은 토기장이의 비유를 통해 당사자의 취향이나 선호도를 고려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개인의 존재 목적을 결정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항변한다(롬9:19~23).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하시면서 동시에 인간에게는 완전한 자유의지를 허락하셨다. 엄밀히 말해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완전한 자유의지는 공존할 수 없는 개념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 두가지 사상이 어떤 역동적인 관계에 있는지 말해준다. 
하나님은 야곱이 장자권을 계승하도록 정하셨다(롬9:13; 말1:2). 그분의 정해진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간의 잘못된 선택이라는 모든 변수를 사전에 차단해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삭과 에서, 리브가와 야곱의 잘못된 선택을 제지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사람의 잘못된 선택의 변수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하나님의 뜻대로 야곱이 장자권을 계승했다.
하나님께서 삼손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그를 나실인으로 구별하셨고 블레셋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사로 택하셨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계획과는 정반대의 삶을 산다. 그러나 우리는 삼손의 생애의 마지막 순간에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본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을 세상에 나게 하실 때 그 사람만이 이루어야 할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말해 준다.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전한 기별은 인간이 하나님이 정해주신 사명을 거절할 때 하나님은 그 변수를 어떻게 극복하실 지 통찰력을 제시해 준다.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해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의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에4:13,14). 에스더를 왕비가 되도록 섭리하신 것은 하나님이셨다. 그럼에도 여전히 변수가 있다. 바로 에스더의 선택이었다. 에스더는 자신의 민족을 위기에서 구원하는 일에 개입하지 않기로 선택할 수도 있었다. 만약 그런 상황이 생긴다면 하나님의 전체 계획은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 경우 모르도개의 말처럼 유다인은 다른 경로를 통해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
사람에게 선택의 자유를 허락하셨지만 그 선택을 지혜롭게 사용하셔서 결국은 궁극적으로 선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섭리(롬8:28)에 대해 잠언 기자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잠16:9)이심을 고백한다. 그래서 자신의 작은 발걸음들이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을 이루는데 어떤 역할을 할지 전혀 헤아릴 수 없는 우리는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고 그를 의지하며 매순간 선택의 발걸음을 내딛어야 할 것이다(잠16:3;시37:5~7;사42:16;삼상2:9;렘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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