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2호> 조사심판과 십자가
기자 : 재림신문사 날짜 : 2018-11-22 (목) 11:57
조사심판과 십자가

조사심판의 교리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교리를 위태롭게 하는가?



조사심판 교리는 오래 전부터 재림교회 안팎에서 많은 공격을 받아왔다. 믿음을 통해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의 교리를 위태롭게 한다는 것이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이 또 다시 심판대에 서서 최종 구원 여부를 판결 받는다는 것은 구원의 확신을 저해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멀게는 약40년 전 이미 호주와 미국에서 이와 관련된 논의와 논쟁이 있었으며, 최근엔 그 논쟁의 불길이 한국재림교회로 옮겨와서 이와같은 도전을 던지는 몇몇 사람들이 일어났다. 그들은 조사심판과 구원의 확신은 양립할 수 없고, 구속은 이미 십자가에서 완성됐기 때문에 조사심판은 필요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재림교회의 구원론은 비성경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재림교인으로서 우리가 이 문제를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구원의 확신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이 문제와 관련해 엘렌 화잇이 공격을 받고 있다. 우리는 그녀가 ‘대쟁투’에 기록한 조사심판에 관한 내용을 정밀하게 조사함으로써 이 심판의 교리가 구원의 확신을 저해하는 지,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를 가르치고 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첫째 천사는 “심판하실 때”(계14:7)가 이르렀다는 기별을 선포한다. 이 심판을 재림교회는 ‘조사심판’ 혹은 ‘재림 전 심판’이라고 말한다. 이 교리에 관해 재림교회 신조 24항은 이렇게 말한다.
“조사심판은, 죽은 자들 중에 누가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고 있으며,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첫째 부활에 참여하기에 합당한가를 하늘의 주민들에게 계시해 준다. 그것은 또한 살아 있는 자들 가운데 누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고 있고, 그러므로 그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도록 승천할 준비가 돼있는지 분명히 알려준다. 이 심판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구원함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를 옹호한다. 그것은 하나님께 충성해 온 자들이 하늘나라를 얻을 것을 선언한다. 그리스도의 이 봉사가 끝나면 재림 전에 인간을 위한 은혜의 기간도 끝난다”(기본 신조,24).
먼저 우리가 답해야 할 질문은 ‘그리스도께서는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고 죽은 신자들을 위해 어떻게 영원한 구원을 확보하시는가?’다. 

조사심판은 행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가르치는가
엘렌 화잇은 성경 시대의 영적인 거인 중 어떤 사람도 죄 없는 완전의 상태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말한다(4증언,12, 믿음,54, 리뷰,1888.10.16; 대쟁투,470,471, 부조,5; 1기별,32,33). 그들은 모두 죄 되고, 불완전했다. 그런 까닭에 그리스도의 입혀주시는 의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했다. 또한 그들 중 어떤 사람도 하나님께 흠 없는 순종을 드리지 못했다. 죄 되고 불완전한 것 외에도 그들의 생애의 일들은 그들의 타고난 본성의 오염시키는 영향으로 말미암아 더럽혀져서 하나님께서 가납하실 수 없었다. 그들의 모든 생애, 그들이 가졌던 모든 것은 그들의 타락한 상태와 개인의 죄 됨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가지 질문에 마주친다.
첫째, 삶의 의로운 상태나 행위의 죄 없음, 그 어느 것도 성취하지 못했는데, 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둘째, 만일 구원을 받는다면 어떤 토대 위에서 받게 될까?
엘렌 화잇의 다음의 인용구는 그 두 가지 질문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명확하게 그리고 포괄적으로 해답을 준다. 이 구절은 조사심판으로 불리는 것을 논하고 있는 것의 일부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살아 있지 못한 신자들에게 있어서 이 심판은 그들이 죽은 후에 발생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그들이 어떤 일을 하기엔 너무 늦다. 이 심판에서 하나님의 마지막, 뒤집을 수 없는 판결이 각 사람의 영원한 운명을 인 친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의 중보가 왜 그분의 속죄 사역을 믿고 죽은 자들에게 그처럼 필수적인 지를 보여준다.
“예수께서 당신의 은혜의 백성들을 위해 간구하고 계시는 동안 사탄은 그들을 범죄자로 하나님 앞에 고소한다. …이제 그는 그들의 생애의 기록을 지적하고, 그들의 품성의 결함과 그들이 그리스도와 같지 아니한 점, 그들이 구속주의 영광을 더럽힌 것과, 바로 그 자신이 그들로 범죄하게 한 점들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자기 백성이라고 주장한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죄에 대해 변명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들의 회개와 믿음을 보여주시고, 그들의 용서받은 것을 주장하신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상한 손을 하나님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 앞에 드시고, ‘내가 저희 이름을 알고 있습니다. 내 손바닥에 저희 이름을 새겼습니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51:17). 그리고 당신의 백성을 고소하는 자를 향해 ‘사탄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슥3:3)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아버지께 충성된 백성들을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시기 위해 당신의 의의 옷을 입히실 것이다(엡5:27). 그들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돼 있다. 그리고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계3:4)고 그들에 관해 기록돼 있다”(대쟁투,484,485).

이 구절의 주목할 점 7가지
첫째, 이 구절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는 자들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는 심판의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구원을 하나님께 의존하고 살다가 죽은 사람들이다.
둘째, 그들의 생애의 기록은 생전에 죄 없는 완전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그들의 품성의 결점들, 그리스도를 닮지 못한 점들이 그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셋째, 예수님은 사탄의 고소의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하시거나 피고인이 마침내 의로운 품성을 계발해 죄 없이 살기를 배웠다고 주장하지도 않으신다.
넷째, 예수님은 그들을 변호하시면서, 그들의 회개와 믿음-우리를 가납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반응-을 가리키신다. 그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중보하실 수 있다.
다섯째, 그들을 대신해 속죄의 죽음을 당하신 증거로 자신의 손을 드시면서, 예수님은 그의 공로로 그들을 가리시고, 그렇게 해 그들을 아버지께 점 없고 주름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로 드리신다.
여섯째. 그들의 이름은 생명책에 남아 있으며, 하나님은 그들의 생전의 삶이나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공로가 그들을 덮어주고 그들의 결핍을 채워 주기 때문에 그들이 가치 있다고 선언하신다. 비록 그들이 그들 자신으로는 본성적으로 죄악되지만, 그리하여 그분이 요구하시는 죄 없는 완전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해주신다.
일곱째, 그와 같이 복음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살전4:16)이라고 바울이 말하는 자들에 대해 완전히 성취된다. 그들의 운명은 영원히 결정된다. 그들은 영생을 유업으로 얻는다. 이 모두는 그들을 대신해 행하신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대한 믿음 덕분이다.
그들이 회개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상태에서 살았으므로, 그들의 중보자는 그들의 용서를 확보하셨고, 그분의 전가된 의로 그들을 덮으셨고, 그와같이 해 그들의 구원을 확실하게 하셨다. 그들은 영광의 왕국에서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대쟁투’의 이 구절은 사탄도 자기 나름의 공의 개념, 즉 타락한 인간이 구원을 받을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는 표준, 다시 말해 사탄 판 복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 구절에 따르면, 사탄은 세 가지 이유로 이 사람들을 그의 백성이라고 주장한다. 즉, 그들의 결점 있는 품성, 그리스도를 닮지 않은 모습, 그리고 죄악된 행위가 그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그들의 생애가 흠 없는 품성을 계발한 생애였고, 그들이 그리스도와 같아지고, 죄 없이 살았다면, 사탄은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주장하지 않고 내어줄 것이며, 그들이 구원받기에 합당한 자라고 인정할 것이다.

사탄의 구원신학
여기 사탄의 구원 신학의 세 가지 면을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그의 방법은 행함, 수행, 성취 중심적이다. 사탄은 모든 사람이 그가 성취한 것에 기초해 그가 받아 마땅한 대로 상급을 받기 원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영원한 운명을 그의 실제적, 객관적 기록을 토대로 결정하시기를 원한다.
둘째, 죄에 대한 각 사람의 관계가 결정적인 요인이다. 만일 그가 다소라도 죄에 관여돼 있다면, 하나님은 그 형벌을 집행하셔야 한다. 그는 사형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사형이 그의 운명이다.
셋째, 사탄의 방법은 은혜나 믿음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죄인들의 운명을 구주가 없는 양 결정한다.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 구속적 승리, 구원하시는 의는 사탄의 구원 신학에서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예수께서 지상에 사시면서 하신 일, 특별히 십자가에서 우리의 대속주로 이루신 일, 그리고 아버지 앞과 보좌에서 우리의 대표자로 오늘 하고 계신 일은 사탄의 계획에서 절대적으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현재의 역사적 삶에서 일어난다. 우리가 예수님의 품성처럼 의로운 품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어 예수님처럼 죄짓지 않고 살 수 있음을 증명하든지, 영원히 잃어버린 바 되든지 둘 중 하나다.
사탄이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의 몇 가지 요소를 그의 신학에 편입시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가짜는 항상 원본을 닮는다. 기만은 항상 그들이 왜곡하는 진리와 완전히 동떨어져 있지 않다. 두 계획 모두에서 율법이 사람의 행위를 평가하는 표준 역할을 한다. 둘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의롭고, 선하고, 거룩하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표준, 즉 창조주가 사람이 어떻게 되기를 의도하셨는지에 대한 궁극적 표준으로 내세운다. 둘 모두 각기 사람의 생애를 검토하고, 그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는 심판이 있다.
그러나 두 계획의 유사성을 조사하고 다른 점들을 고찰해 볼 때, 우리는 곧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한다. 즉 사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을 포함시키긴 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룩하신 것들은 삭제해 버렸다. 사탄은 율법을 좋아한다. 그것이 선과 악을 구별하는 기본적 기준이 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죄인으로 정죄하기 때문이다.
사탄은 우리의 모본으로서의 예수의 개념을 사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분은 하나님의 품성이 참으로 어떠하신지 그리고 죄가 사람의 영적인 온전성과 도덕적 완전을 왜곡시키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이 어떤 존재가 됐을지 계시해 주기 때문이다. 그와는 달리 사탄은 모델로서의 예수를 강조한다. 왜냐하면 그는 중보자가 없는 상태에서 우리와 그리스도를 비교하는 것보다 우리의 죄악성, 불완전, 그리고 무가치함을 더욱 명백하게 만들어줄 뿐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경우를 더욱더 절망적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달리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사탄은 심판을 환영한다. 예수께서 우리를 정죄에서 해방하시고 그분 안에서 의롭다고 선언하실 때 거기서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이 드러나기 때문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롬3:21~26). 그는 우리가 유죄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가 그에 따라 심판을 받기를 원한다. 그가 우리의 현 상태에서 우리가 행하는 것에 상응하는 상급을 받게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정죄는 확실하다.

하나님의 구원신학
앞서 인용한 ‘대쟁투’의 이 구절은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은 앞서 열거한 세 가지 주요 분야 모두에서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첫째,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성취 중심적이 아니라 그리스도 중심적이다. 신자의 궁극적 운명은 그가 얼마나 선하느냐, 의를 얼마나 많이 계발시켰느냐, 혹은 시험을 얼마나 잘 물리쳤느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대한 그의 믿음의 참여에 의해 결정된다.
둘째, 하나님의 구원 체계에서 결정적인 것은 사람과 죄와의 관계(참여)가 아니라 사람과 구주와의 관계이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중요한 문제는 “네가 죄에 대해서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그대가 예수님에 대해서, 그리고 그대와 같은 죄인들을 위해 그분이 마련하신 구원에 대해서 무엇을 했느냐?”다. 하나님의 계획에 따르면, 중요한 쟁점은 죄인들이 회개와 믿음으로 복음에 반응했느냐,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죄에 대한 용서와 그의 영적인 부족함과 도덕적 불완전을 채워줄 그리스도의 전가된 의, 둘 모두를 얻느냐다.
셋째, 사탄의 가짜 신학과는 달리,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은 은혜와 믿음이 중심적 역할을 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 문제에 대해 은혜로 말미암아 인간을 대신해 행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용서와 구원하시는 의를 부여하는 해결책을 마련하신다. 용서와 의 모두 회개와 믿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속죄적이면서 대속적이기 때문에 죄인들을 용서하실 수 있다. 죄인들은 그리스도의 구속적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그는 거기서 유익을 얻고 그것을 활용할 수 있다. 이 일은 오로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그들의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일 때만 가능하다.
두 계획에 대한 위의 비교와 대조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사탄의 모조품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모조품 복음에서는 모든 것이 죄인과 그의 개인적 성취에 달려 있다. 그의 영원한 운명은 그 자신이 어쩐 존재인가-그가 영적으로 완전한가 아니면 불완전한가-에 달려 있다. 그가 가진 것-그것이 개인적 공로이든 죄책이든-에 달려 있다. 그가 하는 것-그것이 도덕적으로 의롭거나 죄된 것이든-에 달려 있다. 사탄은 품성의 결점을 가진 자들, 그리스도를 닮지 않은 자들, 그리고 죄악적 행위를 행한 자들을 그의 신민으로 주장한다. 그리고 그들이 영생이 아니라 영원한 멸망을 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복음은 모든 것이 그리스도와 그분께 대한 죄인들의 반응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분의 은혜의 나라의 시민들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지을 시간이 됐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하신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죄에 대해 변명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들의 회개와 믿음을 보여주시고, 그들의 용서받은 것을 주장하신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상한 손을 하나님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 앞에 드시고, ‘내가 저희 이름을 압니다. 내 손바닥에 저희 이름을 새겼습니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1:17). 그리고 당신의 백성을 고소하는 자를 향해 ‘사탄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슥3:2)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아버지께 충성된 백성들을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로 나타내기 위해 당신의 의의 옷을 입히실 것이다(엡5:27) …그리하여 새 언약의 약속이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대쟁투,484,485).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으매”(롬3:10,23)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속죄적 죽음에 토대를 둔, 그들이 받을 가치가 없는 주님의 용서를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죄인으로 서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그들의 구주의 대속적 생애에 중심을 둔 그리스도의 입혀주시는 의를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그들의 잃어버림의 상태, 영적인 결핍, 영원한 죽음의 상태에 빠지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타락한 인간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다.
엘렌 화잇은 이상 가운데 하늘에 갔었다.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라. “나는 말하자면 크고 흰 보좌 앞에 데려가졌다. 그리고 거기서 미래에 나타날 그대로 나의 생애를 보게 됐다. 나는 자랑할 것이 전혀 없다는 것, 즉 내가 내놓고 호소할 수 있는 아무런 공로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당신의 은총을 받기에 합당치 않나이다. 조금도 합당치 않습니다.’라고 부르짖었다. 나의 유일한 소망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구주 안에 있었다. 나는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주장한다. 예수께서는 그분을 의뢰하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시다”(리뷰,1881.11.1)
우리는 조사심판, 곧 재림 전 심판 때에도, 그리스도의 입혀주시는 의, 곧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에 의존한다. 거기서 우리가 의존할 수 있는 것은 십자가에 매달리는 것 뿐이다. 그리스도의 피만이 우리의 희망이다.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로써 그(참소자)를 이겼으니”(계12:11). 
(헬뮷 오트 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함’, 제4장 요약)

손윤호 sony18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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