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1호>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아
기자 : 재림신문사 날짜 : 2018-11-14 (수) 13:28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아

예수님의 손


손윤호 sony1844@naver.com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다락방에 오셨을 때 제자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다. 다락방으로 돌아온 도마는 동료들의 기쁨에 찬 모습을 보고 놀랐다. 그들은 앞다퉈 그에게 살아나신 구주에 대해 말해줬다. 다 듣고 난 도마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요 20:25). 의심하는 제자가 보기 원했던 것을 예수님의 음성도 얼굴도 아니고 바로 그분의 손이었다.
네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신체의 어느 부분보다 특히 손에 관한 언급이 많다. 예수님은 열병으로 누워있던 베드로의 장모에게 손을 얹으셔서 낫게 하셨고, 소경의 눈에 손을 대셔서 눈을 뜨게 하셨으며, 귀먹고 어눌한 사람의 양 귀에 손가락을 넣어 치료해 주기도 하셨다. 구주의 만짐을 통해서 믿음이 생기고 기적이 발생했다. 성경에 예수님의 손이 언급되면 예외 없이 다른 사람을 돕는 장면이 등장한다. 예수님의 손은 사랑의 도구였다. 예수님의 손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
고난과 희생의 상징
첫째, 무엇보다도 고난과 희생의 상징인 못자국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상처는 예수님이 무한한 사랑의 실천자이심을 보여준다.
성경에서 손은 마음의 종이요, 행위의 상징이다. 행동은 그 사람이 그저 공언에 그치는 사람인지, 아니면 행동과 실천의 사람인지 드러내준다. 자신이 믿는 바를 삶으로 실천하고 자신이 믿는 바가 행동에 반영되게 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확실하게 보여준다. 오늘날 사람들은 믿음이 행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그리스도인의 손에서 확인하기를 원한다. 사실상,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은 “당신의 손을 보여주시오. 그러면 우리가 믿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영국의 한 그리스도인이 남양군도의 흑인 노예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백인 주인이 허락하지 않았다. 예수님을 모르고 죽어가는 노예들을 바라보던 그는 자원해 노예가 됐다. 그는 쇠사슬에 매인 채, 작렬하는 태양 아래서 흑인 노예들과 함께 사탕수수 밭에서 강제 노역을 하게 됐다. 노예들은 그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노예가 된 것을 알고는 그의 기별에 마음을 열었다. 그들은 이 백인 그리스도인의 말보다 그의 손을 봤던 것이다. 
초기 교부 파피아스는 천국의 풍성함을 이렇게 묘사했다. “하늘나라의 포도나무는 큰 가지가 일만 개가 되고, 그 큰 가지는 작은 가지가 일만 개가 되고, 그 작은 가지는 곁가지가 일만 개가 되고, 그 곁가지는 어린 가지가 일만개가 되고, 그 어린가지마다 일만개의 포도송이가 열리고, 포도송이마다 일만개의 포도알이 달리고, 포도알마다 일만근의 포도즙이 생산된다.” 만일 이런 나라에 들어갈 소망을 간지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나라가 있다는 우리의 말을 믿기 전에 그런 신념이 우리 생활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보기를 원한다. “당신의 손을 보여 달라.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봉사의 상징
둘째, 예수님의 손은 봉사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예수님의 손은 자신이 선포하는 기별을 나타냈다. 도마는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그분의 손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우리는 매일 드나들기 위해 많은 문의 손잡이를 잡는다. 손잡이에 남아있는 지문은 우리가 어떤 장소를 출입했는지를 밝혀준다. 그분은 죄인과 세리의 집의 문손잡이를 돌리셨다. 그분은 고관대작들의 집에서 열리는 파티장이 아니라 낙인찍힌 사람들, 버림받은 사람들의 집 문손잡이에 지문을 남기셨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계신다. 그분은 마태 25장의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이렇게 당부하신다. ‘굶주린 사람의 집에 양식을 갖고 찾아가라. 그것이 신체적 갈증이든, 영적인 갈증이든, 교제에 대한 갈증이든, 목말라 하는 사람에게 생수를 가지고 찾아가라. 헐벗은 자들에게 줄 옷을 가지고 찾아가라. 병든 사람을 찾아가서 돌보라. 옥에 갇힌 사람들을 가서 보아라.’ 대 심판의 날에 주님은 아마도 우리가 남긴 지문으로 우리를 심판하실지 모른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10:38)는 이 말씀을 읽고 절망했다고 실토했다. 왜냐하면 자신은 그냥 두루 다니기만 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두루 다니시며 많은 집을 방문하시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셨다. 오로지 선을 행하시기 위해. 사람들의 필요에 봉사하시기 위해.
우리는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많은 것을 만진다. 만일 누군가 우리가 남기는 지문을 다 수집해 조사한다면, 어느 곳을 출입하는 지, 어떤 책을 읽는지,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인격의 사람인지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 대한 정확한 자서전이 될 것이다.
완벽한 일꾼의 상징
셋째, 예수님의 손은 일을 완벽하게 하는 손이었다. “내 멍에는 쉽다”고 하시면서 “내 멍에를 메라”고 하신 말씀을 가지고 신학자인 바클레이는 예수님이 목수로서 주로 멍에를 만드셨을  것이라고 추론한다. 그의 추측이 맞다면, 그분이 만드신 멍에는 짐승이 메기에 아주 편안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은 모든 일을 최선을 다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어떤 것을 만드시든 최고의 제품을 만드셨을 것이다. “제작자 나사렛 예수”는 최고의 품질 보증서였을 것이다. 예수라는 인격이 보증하는 제품, 그분이 여실히 드러나 있는 제품이 될 것이다. 화잇 여사는 예수님은 일꾼으로서도 완벽하셨다고 말했다.
머빈 맥스웰은 그의 ‘요한 계시록 연구’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직업이 자동차나 집이나 책을 만들거나 아니 면 밥을 짓는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을 만드는 방식에 의해 우리는 꼴 지어진다. 잘 건축한 가옥에는 목재 이외에 더 중요한 인격이 있다. 우리가 가족의 건강을 위해 정성으로 구운 그 향긋한 냄새의 빵에는 밀가루 외에 더 중요한 그리스도교 정신이 들어 있다.” 예수님의 위대함의 한 부분은 아주 작은 일을 처리할 때 드러내는 성실성과 철저함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제자 요한이 그리로 달려간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요한은 예수님의 시신은 사라지고 무덤 한켠에 수의와 수건이 가지런히 개켜 있는 것을 봤다. 요한은 부활이라는 엄청난 대사건의 현장에서 그가 본 것을 토대로 예수님이 참으로 부활하셨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얻었다(소망,789). 왜냐하면 예수님은 평소 그렇게 하는 것이 몸에 배인 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의 손길을 거치면 모든 일이 철저하고 완벽하게 마무리 되고, 그분의 뒷자리는 항상 깨끗하게 잘 정돈돼 있었다. 도마가 그런 예수님의 손을 보기 원했던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부지런한 독서의 상징
넷째, 예수님의 손은 성경에 특히 많은 지문을 남겼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이 성경을 상고하거니와”라고 말씀하신 분은 성경을 부지런히 탐구하신 분이셨다. “그분이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지식을 얻으셨기 때문에 그분께서 그처럼 성경에 정통하신 사실은 소년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부지런히 연구하셨는지를 보여준다”(소망,70). 우리가 예수께서 읽으셨던 두루마리 성경을 본다면 너무도 많이 사용해서 낡아졌을 것이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전쟁에 나갈 때, “우리 조국을 위하여, 그리고 더러운 성경을 위하여”라고 외쳤다. 더러운 성경을 위해서라니? 오랫동안 읽지 않아서 먼지가 수북이 쌓여 더러운 성경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너무도 많이 보아서, 손때가 너무 많이 묻은 성경을 일컫는 표현이다. 
전자기기에 익숙한 현대는 깊이 있는 성경 연구가 힘든 시대다. 왜냐하면 디지털 독자들은 원래 너무 빨리 읽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나의 지식으로 만들려면 좀 더 깊이 길게 생각해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변해버린 독서의 특징을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한 때 깊은 단어의 바다에서 스쿠버 다이버였다. 그러나 지금 나는 제트 스키를 탄 사람마냥 수면만을 지그재그로 달리고 있다.” 깊은 독서, 빈번한 연구가 필요한 시대다. “더러운 성경, 더러운 예언의 신 서적”이 우리의 목표가 돼야 한다.
프랑스혁명 당시 혁명 주체 세력들은 귀족 계층을 재판할 때 재산세 영수증이나 은행 잔고를 보지 않았다. 빈민 계층과 부유한 계층을 가려낸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손을 검사했다. 왜냐하면 손은 그 사람의 과거의 생애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만일 손이 부드럽거나 굳은살이 박이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단두대로 보내졌다. 마지막 심판도 손에 의한 심판, 지문에 의한 심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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