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9호> 그리스도인이 현실을 외면한다며?
기자 : 재림신문사 날짜 : 2021-08-17 (화) 16:10
그리스도인이 현실을 외면한다며?

인간의 생각 하나님께 투영 말아야


광복절은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광복된 것을 기념하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경축하는 날이다. 우리나라의 독립은 지역이나 이념, 종교 등을 뛰어넘어 한국 사람이라면 기뻐할 수밖에 없는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어떤 재림성도는 우리나라의 독립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사람이 다름 아닌 선교사이며, 안식일학교부장, 청소년부장, 가족위원회위원장, 시조사 편집국장 등을 역임한 교회의 지도자였다면.

우리 민족의 현실에 무지했던 결과
왕대아(王大雅, Theodora Wangerin) 여사는 ‘시조’ 1940년 5월호에 ‘국가에 대한 신민의 의무’란 글을 게재했다. 왕대아 여사는 선교사 사엄태(Mimi Scharffenberg) 여사의 동생이자 왕아시(R. C. Wangerin) 목사의 사모이며 한국재림교회 안교교과를 만들고 ‘시조’에 매달 기고문을 쓰던 선교사였다. 
왕대아 여사는 이렇게 썼다. “세상정부(世上政府, 일제를 가리킴)를 하느님께서 제정(制定)하신 것”이라며 “통치자(統治者, 천황을 가리킴)는 ‘하느님의 사자(使者)’”라고 언급했으며, “신민(臣民)은 국가(國家)에 충성(忠誠)을 다하고 선량(善良)한 국민(國民)이 되어 국은(國恩)을 보답(報答)하여야 할 것이다.”
그가 일제를 가리켜 하나님의 사자라고 언급한 것은 나라가 흥하고 쇄하는 모든 것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일제에 침략당한 것 또한 하나님의 뜻이란 의미다. 혹자는 왕대아 여사가 일제에 순응하는 성향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결코 일제에 협조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이러한 특징은 1935년 이희만 순안 의명학교장이 신사참배를 결정한 사건에서 잘 드러난다.
1935년 11월 14일 평안남도지사 야스다케(安武)가 도내 공·사립학교장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도내 공·사립학교 중 윤산온(G. S. McCune) 숭실학교장, 정익성 숭의여중학교장 대리 그리고 이희만 순안 의명학교장 등 3명이 학교설립 취지에 따라 참가할 수 없음을 표명하고 신사참배 명령에 불응했다. 학교장 회의가 마친 후 야스다케는 서면으로 “신사참배는 국민교육상의 요건이므로 금후 참배에 응하지 않을 때에는 단호한 처치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뜻을 전해왔고 이 통고에 따라 각 교단은 나름대로 입장을 정하기 위해서 고심했다.
1935년 11월 17일 이희만 교장은 원동지회에 지도를 요청했고, 원동지회는 이 사안에 대해 대총회에 다시 지도를 요청했다. 그런데 대총회는 일본합회의 자문을 근거로 이듬해 1월 17일 신사참배를 승인했다. 의명학교의 신사참배 소식이 알려지자 지역교회의 교인들의 비통함이 합회에까지 전달됐다. 합회에 결의 취소를 강권하는 편지들을 보내는 한편, 합회를 상부기관으로 인정치 못하겠다는 운동도 일부지역에서 일어났다(이국헌, 신사참배 논쟁과 재림교회 역사).
의명학교의 신사참배에 왕대아 여사는 직접 항의서한을 보내며 강렬하게 저항했다. 성경에 기록된 원칙이었기 때문이다. ‘재림교회100년 제1권’ 640쪽에 “시조사 편집국장으로 오랫동안 봉사하고 있던 원로 여선교사 왕대아(Theodora Wangerin, 王大雅) 씨도 항의했다”고 기록돼 있다. 즉, 그는 성경에 기록된 원칙엔 결코 물러섬이 없었으나, 단지 그는 당시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에 무지했던 것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그리고 당장 있을 재림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일제 치하 우리 민족의 아픔을 미처 살피지 못했다.

인간의 잘못된 시각을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
“모든 시련과 고난은 하나님의 뜻”이란 생각에 매몰돼 현실을 왜곡하는 경우는 현대에도 발생한다. 대표적으로 2014년 문창극 총리 후보자 논란이 있다. 그는 모든 고난은 하나님의 뜻이라며 “일제를 통해 우리가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러한 역사인식은 하나님은 경제발전이라는 목적을 위해 민중 학살도 마다하지 않는 분이시며, 일제강제점령기, 6·25전쟁과 이어진 민족분단 등 모든 것이 경제발전과 민족의 단합을 위해 하나님이 내린 징벌이라고 해석할 수 있어 당시 기독교계에서도 비판 여론이 있었다. 
당시 문 후보자가 주장하는 기독교 승리주의적 역사관은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에 널리 유행했던 사회진화론과 흡사하다. 이는 다윈의 자연선택법칙(생물진화론)에 기초한 사회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 사회의 생활이란 생존경쟁이다. 결국 부를 이룩한 자의 시각에서 역사가 서술된다.
다시 말해, 기독교 승리주의적 역사관은 못 사는 건 죄악의 결과이며, 잘 사는 건 하나님의 축복이라 설명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문 후보자는 우리 민족의 게으름 때문에 잘 살지 못하자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일제의 손에 넘겨 잘 살게 했다는 해석을 내놓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후설명편향’에 불과하다. 일본의 심리학자인 고자카이 도시아키(小坂井敏晶)는 이를 쉽게 말해 ‘끼워 맞추기’라고 설명했다. 이미 일어난 일의 원인과 당위성을 현재의 시각으로 끼워 맞췄다는 의미다. 일본에 지진을 비롯한 자연재해가 많은 건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결과라고 설명하는 것이 예다.
김학철 연세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는 당시 문 후보자의 역사관을 두고 “하나님이 게으름 때문에 우리 민족을 일제의 손에 넘겼다고 하는 발상은 하나님을 대단히 고약한 분으로 만드는 신성모독”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동남아시아에 발생한 자연재해를 두고 우상숭배에 대한 벌이라고 하다가, 기독교 국가인 미국에 불어 닥친 허리케인을 두고는 동성애자에 대한 심판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해명해 밝힌 것이 아니라 자신의 근본주의적인 신앙을 하나님에게 투영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재난을 당한 이들에게 특별한 죄를 찾을 수 없을 때는 이른바 희생양 해석이 등장한다. 원인과 결과에 대해 뭔가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세월호 침몰 참사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몇몇 개신교 목회자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바다가 아이들을 삼킨 것은 동성애를 비롯한 우리 성인들의 죄를 아이들의 희생을 통해 깨닫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했다. 하나님을 매우 잔인한 분으로 묘사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죄를 위해 독생자를 내어주기까지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죄를 깨닫게 하려 300명에 달하는 아이들을 희생시키는 모습은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인상을 심어주는 결과를 낳고 있다. 

같은 실수 반복 말아야
앞서 살펴본 사례들은 인간의 잘못된 시각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포장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욕심은 끊임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지금도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사태에서 인간의 잘못된 시각을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인이 현실을 외면할 때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 지 기억해야 한다.

권태건 aux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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