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5호> 설교 표절이 뭐기에 고소까지?
기자 : 재림신문사 날짜 : 2021-07-15 (목) 10:02
설교 표절이 뭐기에 고소까지?

설교는 설교자 본인의 묵상과 깨달음이어야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측 중경기노회재판국(재판국장 김찬곤, 이하 재판국)은 과천 A교회 서 모 목사에게 ‘6개월 강도권 정지’란 징계를 내렸다. 여기서 ‘강도’(講道)란 교리를 설명하는 일을 말한다. 즉, 강도권 정지란 설교단상에 서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서 모 목사가 이 같은 징계를 받은 이유는 다름 아닌 ‘설교 표절’이다.
재판국은 “(서 모 목사가) 5년간 103편의 설교를 표절한 것으로 확인”했으며 “2020년 1월 17일 설교를 살펴보면, 과거 옥한흠 목사가 했던 베토벤 예화를 거의 그대로 베낀 대목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고발인인 과천 A교회 성도들은 “징계 후에도 설교만 하지 않았을 뿐, 예배 집례나 축도 등은 계속 해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지적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사건은 검찰로 송치되기도 했다는 점이다. 
설교 표절은 재림교회엔 없는 개념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상상조차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개신교계에선 설교 표절은 교회를 분쟁에 휩싸이게 할 정도로 중대한 사안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검찰까지 개입할 정도다. 물론 검찰이 개입한 것은 설교 역시 어문저작권의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건을 잘 들여다보면 옥한흠 목사를 비롯한저작권자가 고발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교회 성도들이 담임목사를 고발한 것을 알 수 있다. 즉, 어문저작권은 설교 표절을 제지하기 위한 법적 수단일 뿐, 설교 표절에 관해 개신교인들이 얼마나 엄격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설교 표절이란?
표절(剽竊)이란 도둑질할 ‘표’와 훔칠 ‘절’이 합해진 한자어다. 도작(盜作)이라는 말로 대신하기도 한다. 이에 해당하는 영어 ‘plagiarism’은 ‘납치’ 등의 의미를 가진 라틴어 ‘Plagiarius’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렇게 어의(語義)만 보더라도 범죄의 의미를 강하게 내포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표절이란 “다른 사람이 쓴 문학작품이나 학술논문, 또는 기타 각종 글의 일부 또는 전부를 직접 베끼거나 아니면 관념을 모방하면서 마치 자신의 독창적인 산물인 것처럼 공표하는 행위”로 정의된다. 
현재 모든 분야에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표절 기준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와 한국의 대표적 민간 표절 검사 기관 중 하나인 ‘카피킬러’(Copy Killer)에서 제시하는 기준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출처 표기 없는 인용 ▲주요 내용을 말 바꾸기(paraphrase)한 것 ▲출처를 표기하였으나 인용한 양이나 내용이 정당한 범위를 넘어 학술적으로 새로운 것이라 인정받을 수 없는 것 ▲부정확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혹은 찾을 수 없는 자료 (misinformation of reference)를 인용하는 것 ▲아이디어나 모티브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 등이다. 표절률이 15% 이하면 그런대로 용인이 될 수 있으나 25%를 넘을 때는 창의적 작품으로는 가치를 상실하는데 분야별 특성과 또 작품의 성격에 따라 한계 표절률은 어느 정도 유연하게 적용될 수 있다. 
개신교계에선 이러한 기준을 적용해 설교 표절에 대한 방지책을 다양하게 마련해 오고 있다. 예컨대 예장 통합 측은 2015년에 채택한 ‘목회자윤리 강령’ 중, 강령 제2장 지침, 2) 생활윤리 (2)항에 “나는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표절을 부정직한 행위로 거부한다”고 명시했다. 예장 고신측은 2017년 제67회 총회에서 설교 표절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렸다. “설교 표절이란 설교자가 다른 설교자의 설교를 자기가 작성한 것처럼 반복적이며 위선적이면서 의도적으로 도용하여 편집 또는 인용하는 행위”로 보고 노회는 이를 발견 시 행위자 1차 견책, 그럼에도 이 같은 행위가 반복될 경우 엄중cj벌 해야 한다.”

영적 게으름 경계
개신교계가 설교 표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이유들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양립한다. 먼저 밝은 면을 살펴보자. 한 목사는 설교를 표절해선 안 되는 이유로 사도행전 5장 1~6절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 이야기를 근거로 제시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에 바나바라는 매우 훌륭한 헌신적 인물이 있었다. 아나니아 부부는 그가 받고 있었던 존경이 매우 탐났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를 흉내를 내다가 ‘성령을 속였다(행5:3)’는 이유로 베드로 앞에서 차례로 죽은 사람들이다. 바나바가 존경받은 이유는 ‘전 재산을 팔아 모두 드린 것’으로 ‘함축’돼 있으나 그들의 헌신이 ‘헌금의 양(量)으로만’ 평가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런데 아나니아는 ‘재산의 절반’을 마치 ‘전부’인 것처럼 가장하여 드림으로 자신도 그런 영광된 자리에 오르려고 했던 것이다. ‘전부’와 ‘절반’은 산술적 의미가 아님이 분명하다. 이렇게 절반만으로 ‘전부를 드린 자의 명예와 존경’을 얻으려는 시도가 표절과 무엇이 다른가?”
그는 이어서 설교 표절의 가장 큰 이유는 첫째 설교자로서 소양의 부족함이고 둘째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깊이 묵상하는 경건의 훈련을 적당히 회피하려는 영적 게으름이라고 지적하며, “만약 소명이 확실한 설교자라면 이런 문제는 개인적으로 피나는 노력을 함으로 그 위에 더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극복될 수 있는 문제”라고 역설했다. 다시 말해 설교 표절은 말씀을 묵상하고 연구하지 않는 결과이기 때문이란 것이다. 이러한 기준에서 설교 표절을 바라본다면 성도들이 자신이 섬기는 교회의 목사가 영적 게으름에 빠지지 않도록 촉구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설교 표절, 분쟁의 불씨 될 수도
설교 표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상황엔 어두운 면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 아니라 목사의 콘텐츠, 나아가 교회의 콘텐츠가 됐다는 지적이다.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이 설교를 들으려면 우리 교회에 오라’는 것이며, 마치 ‘기업의 마케팅 포인트’와 같아진 것이다. 담임목사의 은혜로운 설교는 분명 교회를 찾게 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많은 교회가 대형화되고, 기업화되며 세속적인 성격을 상당부분 수용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설교 역시 마찬가지란 지적이다. 
또한 같은 설교라 할지라도 설교자에 따라 다른 영감을 줄 수 있는데, 너무 엄격하게 설교 표절을 지적하고 나서면 이러한 순기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입장도 존재한다. 그리고 설교 표절을 둘러싸고 교회가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도 역기능 중 하나로 꼽힌다.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설교를 단순히 어문저작권의 영역에서 바라본다면 그 가치를 적절하게 평가할 수 있을까. 설교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거룩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설교단에 서는 사람은 누구든지 말씀을 묵상하고 연구하며 받은 은혜와 감동을 성도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교회가 함께 영적 게으름을 경계하자는 면에선 설교 표절은 한 번 생각해 볼만하다. 다만 설교 표절의 어두운 면처럼 세속적으로 변해가고, 교회가 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가 있다.

권태건 aux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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