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9호> ‘다름’이 ‘다양성’으로, ‘흠’이 ‘힘’으로
기자 : 재림신문사 날짜 : 2019-08-08 (목) 12:59
‘다름’이 ‘다양성’으로, ‘흠’이 ‘힘’으로

“하나님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우리가 있길”

사회적 약자는 ‘힘이나 세력 이 약한 사람 또는 집단’이란 뜻을 가진 ‘약자(弱者)’에 사회적이라는 관형사를 붙인 어구(語句)입니다. ‘사회적 소수자’라고도 하나, 사회적 소수자 가 반드시 수의 많고 적음을 기준으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령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의 남 아프리카 공화국은 소수의 백 인들이 다수의 흑인을 지배했습니다. 이와 같이 마이너러티(minority)란 단어는 소수와는 별개로, 비주류라는 의미도 갖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약자 차별은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있어 왔습니다. 우리 사회 안에도 진화론적인 시각으로 약자의 열등성을 들어서 차별을 정당화하는 인식이 팽만합니다. 
‘사회적 약자는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는 고질적인 문제아’ ‘태생적으로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차별받아 마땅한 어쩔 수 없는 것’ 
인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짐에 따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권옹호가 증가추세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반인보다 사회적 약자를 ‘열등처우’하는 조건하에서만 그 목소리가 유효합니다. 사회적 약자의 인권이 일반인의 인권보다 더 우등한 조건으로 보장이 된다면 ‘역차별’ 논란에 휩싸이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인권보장도 감히 넘어서지 않아야 하는 묵시적 인 한계점이 사회 내에 존재한다는 반증입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합의의 영토(the terrain of agreement) 확장
사회 전반적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초점을 잃지 않고 살펴봐야 하는 것은 사유하는 존재로서 ‘우리’의 세계관입니다. 여전히 과학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이 있었던 근대에 맞물린 현시점엔 우리 삶에도 알게 모르게 미·중·거시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우생학적인 잔존물이 있습니다. 특히 서열화에 민감한 우리 사회의 체계 안에 녹아든 우생학적 영향은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우생학적으로 봤을 때, ‘사회적 약자의 인권보장’은 사회전체에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반드시 소거해야할 ‘사회악’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이 자연스러울 만큼 우리사회에는 공고하게 자리 잡은 적자생존의 진화론적인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그러나 인권의 큰 틀로 봤을 때, 인권은 어떠한 사회·경제·정치적 제반사항을 뛰어넘는 상위개념입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유일한 방안은, 그들의 인권을 수호하는데 있어 어떠한 조건이 존재하지 않는 비무장지대, 즉 ‘합의의 영토’(the terrain of agreement)에 편입시키는 것입니다. 합의의 영토란 개념은 원래 인권을 실천하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개발된 것으로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 최소한 이것만은 지키자’고 합의하는 신사협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구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아무리 이념적 지향이 다른 정당이라도 ‘인권의 수호’라는 명분 앞에서는 서로 공동의 목소리를 내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숙한 사회일수록 이러한 합의의 영토가 넓게 포진돼 있어서, 사회가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균형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존 롤스는 ‘정의론’에서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을 언급했습니다. 그는 정의에 관심이 많았는데, 사람이 무지의 베일에 가려져 있는 가상적 상황에 놓여있다고 가정하고 자기 자신이 어떠한 사회적 위치에 처하게 될지 모른다면 자신이 처할지도 모를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는 사회정책에 동의를 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공동체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이 각자 자신의 위치나 입장으로만 생각한다면 단언컨대 정의에 대한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정의는 역지사지의 정신으로 실현될 수 있습니다. 
인권(人權)이란 인간으로서 갖는 당연한 권리입니다. 인권수호의 핵심은 인간의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며,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모든 인간의 기본권은 합의의 영토(the terrain of agreement) 안에서 보장돼야 하며, 이러한 영토의 확장으로 우리사회는 보다 나은 사회로 진일보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선이 머무시는 곳에 우리가 있길 원합니다
신명기는 완벽한 사회적 약자 보호의 제도적 안전망과 사회보장장치로서의 십일조 제도와 사회적 약자를 대표하는 가난한 이에 대한 특별한 배려와 이들을 위한 제도적 장치들로서 가난한 자들에 대한 자발적이며 온정적인 태도 견지와 자발적인 자선(15:7~11) 규정과 추수 시 가난한 자들을 위한 이삭거두기 금지(24:19~22) 규정, 가난한 자들의 맷돌 및 의복전당 금지(22:26,24:6~10) 규정, 가난한 자들에 대한 전당물 취득 시 주택 출입금지(24:10~13) 규정, 가난한 자들에 대한 학대금지 규정, 가난한 자들에 대한 품삯 지불연기 금지 규정, 가난한 자들을 위한 채무 면제년 규정, 고아와 과부 등에 대한 억울한 송사 금지 규정(24:17,18)을 마련해놓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사회적으로 특별히 보호받아야 할 여성의 인권보장 규정들로서 연약한 여성(처녀)의 순결보호 규정(22:13~21),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강간당한 여성의 보호(22:25,26) 규정, 남편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여인과 그가 낳은 장자의 상속권 보호(21:15~17) 규정, 여성포로의 아내삼음에 대한 인권보호 규정(21:11)을 둠으로써 사회적으로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여성들에 대한 규정을 마련함으로 제도적으로 여성들이 사회적 약자의 반열에 들지 않도록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은 실로 고무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압제받을 수밖에 없는 종에 대한 보호규정,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즐기고 보호하기 위한 각종 절기규정, 사회적 약자의 대표격으로서 장애인 보호규정, 사회적 약자로서의 노인보호 명령,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한 종합적 사회안전망으로서 도피성제도 등을 마련해놓음으로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건강한 사회를 구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신명기의 이러한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선교현장에 구체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동안 사회적 약자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하신 것을 봅니다. 또한 그 당시 사회에서는 서열상 가장 낮은 지위에 해당되는 한 어린아이를 제자 중에 보이시고는 이 작은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자는 성부와 성자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 말씀하시며,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를 큰 자의 자리에 세우십니다.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이가 큰 자니라“(눅9:46~48).
사회적 약자를 대하시는 그분의 시선을 기억합니다. 기도 중에 글을 마치는 이 새벽, 오늘 우리가 만나 영접할 하나님,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를 기대합니다.

정리·김진영 domabeam13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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