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8호> ‘다름’이 ‘다양성’으로, ‘흠’이 ‘힘’으로
기자 : 재림신문사 날짜 : 2019-08-02 (금) 09:44
‘다름’이 ‘다양성’으로, ‘흠’이 ‘힘’으로

“하나님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우리가 있길”


                                          - 윤지연 / 윤지연아동가족연구소장 


“좀 더 살릴 수도 있었어….”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마지막 장면은 역사적 실존인물이었던 오스카 쉰들러의 깊은 오열을 그립니다. 쉰들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을 이용해 큰 몫의 돈을 챙기고자 군수산업에 뛰어들었지만, 이후 서서히 그는 전쟁의 실상 속에서 이 미증유의 광기어린 잔혹성 실체를 마주하게 됩니다. 쉰들러는 야만적인 살육현장에서 유태인을 구하기로 결심을 하고 자신의 군수품 공장에 필요한 노동자가 필요하다는 핑계로 사재를 털어 살려낼 유태인들의 명단을 작성해 가는데, 이 명단이 바로 그 유명한 ‘쉰들러 리스트’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이러한 잔혹한 민족말살정책의 근원이 진화론적 과학이라는 가면을 쓴 우생학(Eugenics)이라는 사실입니다.
19세기 후반에 탄생한 우생학은 역사에 형용할 수 없이 깊은 생채기를 남겼습니다. 현재에 와서는 결과적으로 우생학은 여러 돌이킬 수 없는 폐단을 낳았다고 평가를 받고 있지만, ‘과학’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이 일었던 그 당시에는 우생학이 탄탄한 과학적 근거했다고 봤고 그 만큼 우생학으로 인한 사회적 해악에 대해 무관심했으며, 어느 측면에서는 외면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대표적인 진화론자인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은 ‘종의 기원’(1859)에서 생존 경쟁을 통한 자연선택이 생물 종의 진화를 결정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다윈은 자신의 주장을 생물학의 영역에 한정했지만, 그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다윈의 진화론은 당시 사회철학에도 큰 영향을 미쳐 일파만파 사회의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됐습니다. 우생학은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했습니다.
우생학은 인간을 유전적으로 개량하는 것을 목표로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원어인 유제닉스(eugenics)는 그리스어로 ‘좋은 종자’를 의미하며 1883년에 영국의 F. 골턴(Francis Galton)이 최초로 사용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다윈의 진화론과 그 시대의 유전이론을 인간집단에 적용시켜 육종의 시점에 서게 됩니다. 인간의 경우 명확하게 멘델 법칙에 따르는 것은 혈액형을 제외하면 병적 형질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실제는 단종(斷種)이 그 정책의 핵심입니다. 처음부터 우생학에는 학문적이고 이론적인 부문뿐만 아니라 선택적인 번식을 통해 인구의 질을 높이는 사회 프로그램 혹은 공공 정책의 요소가 포함돼 있었습니다.

진화론의 눈물, 우생학: 사회 부적격자는 제거하라
우생학의 짙은 그림자에 대한 무관심 속에 각국은 우생학적인 정책을 세우고 실현했습니다. 미국은 차별적인 이민법을 통과시켰고, 서구의 여러 각국은 ‘사회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수백만 명을 '거세'했으며, 독일 나치 정권은 장애인, 유대인 등 소수자를 무차별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특히 독일 우생학은 나치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가속화됐습니다. 1932년 프러시아 정부는 우생학 프로그램을 실시해서 ‘부적격자’를 자발적으로 거세하는 법을 통과시켰는데 이 법은 그 다음 해에 나치가 정권을 잡은 뒤에는 강제 규정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결과 1934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에서는 30만 명의 허약자들이 거세당했으며 우생학자들은 불치병을 앓거나 정신장애인, 지적장애, 장애 아동 등의 삶을 ‘살 가치 없는 삶’으로 구분한 뒤에, 국가가 이들을 안락사 시킬 수 있다고 정당화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안락사는 대규모 학살의 전주곡이었는데, 나치 정권은 1940년부터 1941년 사이에 약 7만 명의 정신장애인들을 살해한 것을 시작으로 결국에는 수백만 명의 유대인과 기타 ‘바람직하지 않은 성향’으로 분류된 사람들을 제거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비단 독일의 전유물만은 아닙니다. 미국, 일본, 심지어 사회복지강국이라고 불리는 스웨덴에서조차 1930년대 이후에 복지정책을 효과적으로 추진하는 일부로서 적극적으로 도입됐던 아픈 역사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우생학이 가져온 재앙의 근원엔 진화론의 핵심적 원리인 적자생존과 양육강식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나치즘은 진화론을 기초로 한 우생학을 실세계에 적용했습니다. 민족과 인종간의 서열화를 했고 인류에 가장 해가 된다고 판단한 유대인을 인위적으로 도태시키기 위한 인종 말살정책을 펼친 것입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배경이 된 유대인 수용소에서는 가공할만한 집단 살육이 자행됐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수많은 유대인을 이유 없는 참혹한 죽음으로 몰아가게한 근원은 역시 나치즘의 우생학, 진화론적 세계관이었습니다. 이렇듯 우생학은 진화론의 ‘다시는 흘리지 않아야 할 참담한’ 눈물입니다.

Dead man is walking
그렇다면 오늘날 우생학이 가져다준 참담한 결과가 멈췄을까요. 안타깝게도 최근까지도 우생학적인 견해는 제도권 안에서 법적으로 옹호됐습니다. 연면된 현재까지도 우생학은 사회전반에 걸쳐 정책과 교육 그리고 문화와 개인의 인식 저변에 공고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가시적으로는 우생학적인 제도들이 제거됐지만 우리 삶에서는 여전하게 정신으로 남아 작용(Dead man is walking)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한 사회가 약자를 대하는 전반적인 태도는 그 사회가 얼마나 야만한 지를 평가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지표로 작동합니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들은 사회적 약자 차별을 금지하고 있으며 평등한 위치에 끌어올리기 위해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합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제도적으로는 상당부분 진보를 이뤘다고 평가합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질적 제고이며 구현하는 방법에서 성숙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멀지 않은 과거에는 사회적 약자의 열등성 그 자체뿐만 아니라 ‘차이’를 열등성으로 포장해 차별을 정당화하기도 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앞서 소개한 우생학 입니다. 과거 일부 학자들은 피차별 인종의 차이(우열이 아닌)를 차별의 근거로 삼는 연구를 하기도 했습니다. 즉 근거를 갖고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을 하면서 근거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거의 영향권 아래 현재 우리의 삶이 고스란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상당부분 진보를 이뤘다고 하는 오늘 날에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유리천정’이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태도에 녹아 있는 것을 목도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는 ‘힘이나 세력이 약한 사람 또는 집단’이라는 뜻을 가진 ‘약자(弱者)’에 사회적이라는 관형사를 붙인 어구(語句)입니다. ‘사회적 소수자’라고도 하나, 사회적 소수자가 반드시 수의 많고 적음을 기준으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령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소수의 백인들이 다수의 흑인을 지배했습니다. 이와 같이 마이너러티(minority)란 단어는 소수와는 별개로, 비주류라는 의미도 갖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약자 차별은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있어 왔습니다. 우리 사회 안에도 진화론적인 시각으로 약자의 열등성을 들어서 차별을 정당화하는 인식이 팽만합니다. 
‘사회적 약자는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는 고질적인 문제아’ ‘태생적으로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차별받아 마땅한 어쩔 수 없는 것’
인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짐에 따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권옹호가 증가추세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반인보다 사회적 약자를 ‘열등처우’하는 조건하에서만 그 목소리가 유효합니다. 사회적 약자의 인권이 일반인의 인권보다 더 우등한 조건으로 보장이 된다면 ‘역차별’ 논란에 휩싸이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인권보장도 감히 넘어서지 않아야 하는 묵시적인 한계점이 사회 내에 존재한다는 반증입니다. 
이러한 관심이 선언적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일까요?

정리·김진영 domabeam1312@naver.com

   

 
주소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망우로 21길 18, 302호 / 전화: 02)960-0690 / 팩스:02)968-2293 / 이메일: 3004news@hanmail.net /등록번호: 204-29-34632 Copyright ⓒ 재림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