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4호> “죽기까지 충성된 북한선교사가 되리라”
기자 : 재림신문사 날짜 : 2019-07-05 (금) 11:48
“죽기까지 충성된 북한선교사가 되리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선교사 제3차 현장교육 참가 기행문

         - 조보형 / 영주교회 집사




경북 봉화 산골에서 새벽부터 일어나 김밥을 한 보따리 싸들고 인천공항으로 길을 나셨다. 지난해 11월 신청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선교사’ 제3차 현장교육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정말 현장에서 실시되는 생생한 교육에 대한 기대감 때문일까.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산골이라 교통이 불편하다며 인천공항까지 바래다주고 돌아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니 고맙기도 하고 늙수레하게 검게 탄 얼굴에 저물어가는 석양처럼 세월의 쓸쓸함이 함께 스쳤다. 그런 감상도 잠시 전국 각지에서 부지런히 오신 귀한 선교사들을 만나니 반갑고 기쁘고 사랑하고픈 눈빛들이 가득 넘쳤다.
중국의 여건상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세미나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역지사지로 러시아 땅을 밟게 됐다. 안내할 여행사 사장님이 조선족 재림교회 집사님이라 하니 이 또한 어찌 반가운지. 타국에서 재림교인을 만나는 기쁨은 하늘나라에서 믿음의 형제를 만나는 기쁨을 미리 경험하는 것은 아닐지 잠시 생각했다.
조선족 집사님은 입담도 좋아 공항에서 러시아 교회로 오는 1시간 동안 러시아 역사 공부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나가니 얼마나 흥미롭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지. 그분 설명에 따르면 러시아 땅 넓이는 1700만㎢로 미국과 중국 땅을 합쳐 조금 모자란 수준이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땅의 소유국인 것은 당연지사. 그리고 현재의 러시아는 공산국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본주의 국가이며 종교 생활하는데 전혀 제약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불러디보스톡은 동방을 지배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1910년 일본에 의해 대한민국의 국권이 침탈당하자 국내·외 지사들은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이란 곳에 결집해 국권 회복을 위해 필사의 결의를 다졌다. 성명회와 권업회 결성, 한민학교 설립, 신문 발간, 13도의군 창설등으로 민족 역량을 배양하고 1919년에는 임시정부를 수립해 대일 항쟁의 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나 한민족은 1937년 불행하게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에 흩어지게 되고 신한촌은 폐허가 됐다. 이런 안타까운 역사를 지닌 곳에서 북한 선교의 의지를 다진다는 점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첫날 다소 늦은 시각이지만 블라디보스토크 재림교회를 방문했다. 이곳에서 진행될 세미나를 기대하면서도 우리나라 70년대를 연상케 하는 푸세식 화장실과 작은 예배당을 볼 때 복음의 힘이 아직도 열악함에 마음이 시렸다. 세천사의기별이 이곳에 더욱 안정하게, 널리 더욱 깊이 정착할 수 있도록 우리들의 얼마나 많은 기도가 필요한지 다시 한 번 다짐했다.



같은 방을 쓰게 된 참 좋은 집사님 덕에 선교사로서의 사명과 신앙의 깊이를 듬뿍 얻을 수가 있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오직 주님! 잠들기까지 한시도 주님의 사랑에서 눈을 떼지 않는 모습, 전에는 이런 분들의 모습을 보면 회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분들을 만나고 또 한 공간에서 호흡하면서 주님과 관계를 통해 한시라도 끈을 놓지 않음이 세상에서 시험에 빠지지 않는 길이요 또 그 길이 얼마나 나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지 머리로 가슴으로 느끼면서 영적 충만함을 채울 수 있었다.  
11일 세미나 첫 시간 지금도 북한선교를 위해 노력하는 집사님의 은혜로운 간증을 들었다. 그리고 이병주 부장님의 무신론자와 어떻게 하면 성경에 접근할 수 있을까에 대해 강의를 듣고 이 문제를 그룹별로 토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임상우 부교장님의 ‘무신론과 하나님’에 대한 강의를 듣고, 마지막으로 김선만 목사님의 가선교사 준비에 대한 강의를 듣고 그룹별로 토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세미나를 통해 겟세마네에서 십자가까지의 예수님의 불쌍함을 볼 줄 알아야 함을 깨달았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 하나님의 심판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선교사들 사명을 배우니 행복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교육 셋째날인 12일 대원들은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면서 한 민족의 땀과 얼이 서려있는 신한촌을 찾았다. 신한촌을 두 눈으로 보니 그 추운 날 중앙아시아로 끌려가 버려진 우리 민족을 생각하게 됐다. 모두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애국가를 부르며 가슴시린 아픔을 나누기도 했다. 
저녁시간 비행기를 타고 중국 장춘으로 향했다. 중국의 종교 쇄국정책 특성상 이곳에선 종교 냄새도 풍기지 못하는 곳이라 모두 조심해야 한다는 주의를 받으며 장춘에 도착하니 새벽 2시였다. 아침 7시에 출발하려면 어서 눈을 붙여야 했지만 가슴이 설레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윽고 정상에 올랐지만 구름이 백두산 상봉을 뒤덮고 있어 북녘 땅을 또렷이 보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지만 장백폭포는 화사한 햇볕을 받으면서 우리를 맞이했다. 
이곳저곳에서 솟아 나는 유황 온천은 특유의 냄새를 풍기며 신비로움을 자아냈고 웅장한 장백폭포를 보며 주님의 위대함을 되새겼다.
백두산에서 하산하고 이도백화를 지나 도문으로 향했다. 이동하는 동안 가이드로부터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에 대한 얘기도 들었다. 함경북도에서 노비의 아들로 태어나 7살에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가 러시아어를 배우고 연해주에서 사업가로, 언론인으로 또 교육자로서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설명을 들었다. 36개의 학교를 세우고 시베리아 독립운동의 대부였던 최재형 선생은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데 여러모로 도움을 줬다고 한다. 
노블리스오블리주의 사랑을 실천한 가슴 아픈 우리 민족의 역사를 들으며 도문 두만강에 내렸다. 구석구석 가슴 아픈 우리 민족의 한들이 서려 있는 곳처럼, 두만강 너머 우리 형제인 북한은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두만강 푸른 물은 어디로 가고 마른 강바닥만이 보였고 강 건너 폐허처럼 보이는 건물들은 끊이지 않는 슬픔으로 우리 마음에 자리 잡았다. 
소리치면 들릴 듯한 거리에 한 민족의 피를 나눈 형제들이 살고 있는 모습을 바라봤다. 뛰는 가슴 억제하며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저들에게 하늘의 광명한 빛을 비춰 주시길, 그리고 영적인 눈을 뜨고 그 빛을 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떼를 쓰며 애타는 심정으로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두 손 모아 기도했다. 그리고 뛰는 가슴에 약속한다. 주를 향한 일편단심으로 죽기까지 충성된 북한선교사가 되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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