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2호> 재림교회 비무장 복무의 역사
기자 : 재림신문사 날짜 : 2019-06-13 (목) 10:59
재림교회 비무장 복무의 역사

첫 기록은 1952년 4월…200여 재림군인들 실형 살아


재림교회가 탄생할 무렵 미국에선 남북전쟁이 발발했다. 링컨 미 대통령이 노예 해방을 명분으로 7만5000명의 지원병 모집에 나서자, 재림교회 지도자들은 주요 교리들에 대한 교단차원의 입장이 다 정리되기도 전에 군복무관을 수립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재림청년들은 군대에 지원하지 않는 것으로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1863년 3월 3일 지원병 체제가 강제징집 체제로 바뀌면서 재림교회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때 등장한 원칙이 군대 소집엔 응하되 무기를 휴대하거나 살상하는 행위를 거부한다는 이른바 비무장·비전투원 원칙이었다.
그러나 비무장·비전투원에 대한 재림교회의 청원이 미국 정부에 의해 받아들여지게 된 것은 1964년에 와서다. 이는 1864년에 양심적 참전을 거부한 퀘이커교도들에 대해 미국 의회가 비전투병과에 우선 배치하기로 징집 법안을 수정했던 것과 비교하면 100년이나 늦은 셈이다.  
1865년에 남북전쟁이 종료되자 군복무와 관련된 재림성도들의 문제의식도 사라져 버렸다. 그로부터 약50년 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가장 심각한 상황에 봉착한 곳은 독일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한 달여가 지난 1914년 8월 4일, 독일의 재림교회 지도자들은 모든 것들이 급변하는 전시 상황에서 대총회 지도자들과 협의를 거치지 않은 채 정부 당국에 재림청년의 전투원 복무와 안식일 군복무를 약속했다. 또한 그들은 독일의 성도들에게 “우리가 군복무를 위한 징집 요청을 받거나 군인의 신분으로 있는 한 우리는 기꺼이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수6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안식일에도 무기를 지니고 복무한 모습을 본다”고 기록한 회람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와 기타 간행물들은 여러모로 재림성도들의 저항을 불러왔다. 그것은 1915년 정통 재림신앙으로부터 벗어난 개혁운동이라는 조직이 나타나게 된 동기가 됐다. 
비단 개혁운동에 몸담지 않더라도 당시 전시 하에서 군대에 징집된 재림청년들 사이엔 전투원으로 안식일에도 복무하는 청년들과, 개인의 신앙 양심에 따라 안식일을 준수하기 위해 입대를 거절할 뿐 아니라 비무장·비전투원으로 복무하기를 원하는 청년들로 나뉘었다. 이러한 사태는 제1차 세계대전 후 독일 교회가 분열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분단 상황과 군사정권이 만든 비극
한국의 재림군인이 종교적인 이유로 고초를 당한 최초의 기록은 1952년 4월이다. 당시는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한 한국전쟁이 한창인 때였다. 그 가운데서 A 재림군인은 집총을 거부했고 구타를 당해 입원치료를 받은 바 있다. 전쟁이 끝나면 재림군인의 종교적 자유가 보장될 것이란 희망도 잠시 뿐이었다.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27일 휴전조약이 맺어졌을 뿐 존전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집총거부 또는 병역거부 행위는 그것이 양심에 따른 것이라 할지라도 용납되기 어려운 사회 분위기가 조성됐다. 군부가 정권을 장악한 60~80년대 상황은 더욱 암울했다. 
60~80년대에 많은 재림군인들이 집총거부 및 안식일 훈련 거부 등으로 항명죄로 몰려 교도소로 보내졌다. 그러던 중 1967년 1월호 ‘교회지남’은 4번이나 논산훈련소로 향한 두 재림군인의 소식을 전했다. 당시 채의구, 심은수 청년은 논산훈련 소에서 안식일 준수와 집총거부를 이유로 항명죄로 선고돼 육군교도소에 보내졌다. 그러나 출소 후 다시 훈련소 입영 통지서를 받아 재입소하고 또 다시 항명죄로 육군교도소로 보내지기를 4번이나 되풀이했다. 이들이 4번째로 훈련소를 향할 때는 이들과 처음 훈련소에 입소했던 동기들은 이미 전역한 뒤였다. 두 청년은 4번째 입소 후에 군간부들의 배려를 얻어 무사히 군 생활을 마칠 수 있었다. 첫 입소 뒤 6년만이었다. 
2001년 이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은 대부분 군 입대 자체를 거부해, 군사법정이 아닌 민간법정에서, 군형법 대신 병역법의 적용을 받아 대부분 징역 18개월을 선고받아왔다. 이지춘 한국연합회 종교자유부장은 “1976년까진 150명 이상의 재림군인이 안식일 준수와 집총거부로 총60년 이상의 형을 살았다”며 “그 후엔 대총회의 지도로 군에서의 안식일 준수와 집총거부는 개인의 양심적 문제로 취급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1976년 이후 현재까지 49명의 재림군인이 실형을 선고 받았다. 그중 집총거부는 21명이며 병역거부는 3명이었다.
그러던 2018년 6월 28일 헌재가 대체복무 없이 양심적병역거부자들을 처벌하는 현행법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결했다. 국회에서 2019년 말까지 입법이 이뤄지면 이르면 오는 2020년부터는 대체복무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투쟁해야 얻을 수 있다”
물론 현재의 대한민국이 신앙과 양심의 궁극이 드러나는 전쟁 중에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전쟁의 종전을 선언하자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는 상황이니 군복무 중 신앙을 지킬 수 있는 길이 더욱 넓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이지춘 부장은 “어떤 제도가 마련된다 하더라도 우리 청년들의 가슴에 신앙적 열정이 없다면 아무 소용없을 것이다”며 “개인의 양심에 대한 분명한 표준이 설 수 있도록 재림청년들을 위한 신앙교육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권태건 aux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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